105 계자 여는 날, 8월 1일 달날 비

조회 수 1293 추천 수 0 2005.08.04 12:32:00

< 105 계자 여는 날, 8월 1일 달날 비 >

빗소리가 참 좋은 아침이었다는 새끼일꾼 미리형의 말처럼
모두의 마음 또한 그러하였겠습니다.
이른 아침, 고친 고래방에서 계자를 같이 하러 먼저 들어온 어른들이
몸도 살펴 깨우고 마음도 깊이 바라보았답니다.
몇은 영동역으로 아이들을 맞으러 가고
남은 이들은 논밭을 살피고 학교 둘레를 정리하며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지요.
"몸집이 다들 커서 주변 공기가 술렁술렁거렸다."고 쓴 이근샘의 기록이 아니어도
같은 마흔 덩어리(계자 아이들 규모)인데도 좀 더 많아 보이고
다른 때보다 좀 더 시끄럽고 툭툭 싸움도 잦데요.
근영샘도 말했듯 여기선 더욱 자유롭고픈 아이들이라 더하지 않을 지요.
마흔 넷의 아이들과 스물 둘의 어른들이 이 여름의 첫 계자,
백다섯 번째 계절 자유학교 문을 여는 첫날이네요.

모둠끼리 논밭에 나갔더랍니다.
토란이며 차조기며 수수며 콩이며 차고 오르는 것들 사이를 걸었지요.
박이며 호박이며 오이며 방울토마토며 타고 오르는 것들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쉼터 포도밭을 지나 논다랑이에 들어 진흙 밟으며 피를 뽑을 참인데,
비가 내렸어요, 거센 소나기가 쏟아졌지요.
첨엔 아차 싶었겠지요,
그림놀이와 논밭돌보는 일 가운데 바깥을 잘못 골랐다 싶은.
비가, 억수같은 비가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있기에 썩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니까.
"개울에서 아예 비랑 맞섰어요."
이왕 젖은 몸이라고 물에 뒹굴었답니다.
아이들은 산에 걸린 구름이며 안개 오르는 산자락이며
돌아와서도 감흥에 젖어 입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댔지요.
어려운 상황이 역설적으로 빚어내는 빛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산에 오르고 숱한 극한점에 도전하는 것도 그래서이겠지요.
열악함은 더한 환희, 배움을 배가시키기도 한단 말입니다.
오늘 창대비 내리는 대해리의 아이들이 그랬더랍니다.

저녁 때건지기 하고 큰 마당 잘 쓰라 비가 잠시 그쳐주었습니다.
마당에서 이근샘이 어슬렁거리자 축구공을 든 아이들이 에워쌌네요.
여자방에선 태석샘이 아이들과 얽혀
손으로 하는 놀이란 놀이는 다 불러들이고 있었지요.
따끈따끈한 책은 집에 더 많을 것을
아쉬운대로 것도 책방이라고 아이들 벌레처럼 붙어도 있고,
여튼 끊임없이 구석구석에서 제 자리를 찾아들어가 꼼지락거리는 아이들입니다.
아, 그전에 아이들이 개울가로 가서 비워놓은 학교는
물놀이를 떠나지 못한 몇 아이들과 바둑알에 심취한 창원샘이 지켰더라지요
(떨거지샘이 떨거지 애들 건사했다고들 놀려도 개의치 않는).

연규며 기환이며 대호며 봤던 아이들 다시 보는 즐거움을
새끼일꾼 무열이형과 유상샘이, 그리고 승현샘이 말했습니다.
내리 오고 있는 물꼬 징잽이(?) 동희, 중국에서 날아온 희주,
오동통 주환이, 꼼꼼이 선재, 졸졸거리는 지선,
심드렁한 표정이나 한껏 신명을 내는 한슬,
분위기가 많이 달라 연규랑 여전히 눈 뎅그란 기환이랑 살살이 휘연이,
큰 엄마같은 세인이와 저 예쁜 줄 저가 더 잘 아는 영인이,
성큼 자라버린 태우, 많이 궁금하던, 여전히 밖에 더 관심 많은 창욱이,
서로 기억에 없지만(제가 나라밖에 있을 때 왔던가 봐요)
물꼬 기억이 아주 선명하다는 창기와 민지,
펄펄 열이 끓는 몸으로도 물꼬귀신 되겠다고 온 호정이...
한 밤, 고친 고래방에서 그렇게 왔던 녀석들도 첨 온 아이들도
춤추며 온 방을 누볐더랍니다.
그럴 때 가끔 한 둘 앉았는 아이라도 있으면
여기도 '소외'가 일어난다 불편해들 하지요, 특히 열정 넘치는 신입이라면 더욱.
그런데 다 '쏠릴' 필요가 있나요?
모두가 쏠리는 '광기'를 더 경계해야지 않을 지요.
놀기도 하고 관망도 하고 기웃거리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다만 버리거나 무관심해지지 않고
그 아이들을 얼마나 '보느냐'가 빗장 아닐지...

아이를 씻깁니다.
"잠깐!"
"왜?"
"물을 잠그고 하면 안돼요?"
"왜?"
"귀로 들으면 더 차갑게 느껴지니까..."
꼭 같애(틀어 둔 거나 잠근 거나), 하며 들은 척도 않고 그냥 하려다가
문득 그렇겠구나, 정말 감각이란 게 그런 거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들과 지내다보면 그리 멈칫하는 순간들이 있지요.
문득 멈춰서 아이를 통해 발견하는, 우리 생을 채우는 소소한 느낌들을 훑을 수 있기를,
우리가 놓치는 아이들의 지점에 발길 혹은 호흡을 멈출 수 있기를
이 계자도 바래봅니다.

빛나는 새끼일꾼들이 이 계자도 함께 합니다.
이곳에서 저가 배운 것을 동생들과 나누러 떠나온 걸음들입니다.
이 땅의 중고생이 얼마나 바쁜 존재들인데, 더구나 공부께나 한다면 더하지요,
그런데도 귀한 방학을 돌아가며 예 손을 보태는 그들입니다.
초등 3년 때부터 와서 고 1이 된 무열이형,
초등 1년 때 와서 중 3이 된 미리형,
"발우공양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너무 귀여워서 행복했다,
하지만 조금 피곤하다."
여자방바닥이 버석버석해서 바지런을 떨어야겠다는,
당연하지만 아이들이 참 예쁘다는, 초등 2년 때 와서 중 2가 된 선아형,
"다리는 더 아파졌다, 항상 아픈 머리는 또 아프다
하지만 여긴 견딜 수 있게 한다. 이곳이 적어도 나에게 가지는 힘."
이라고 글을 남겨준 초등 3년 때 와서 고 2가 된 수민이형,
전천후 정방위일꾼으로 웬만한 품앗이 일꾼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으며
물꼬의 가치관을 동생들 사이에서 잘 펼쳐들 주는 형님들입니다.

공동체 아이고 물꼬 상설학교 1년생인 류옥하다가 선진샘을 불렀습니다.
"나 좀 보자면서?"
저녁 밥상에서 류옥하다가 선진샘한테 따로 긴히 좀 보자했답니다.
그들이 나누는 얘기가 창문을 넘어왔습니다.
"내가 다른 공동체에 갔다 왔는데 갔다 와서 피곤해.
하룻밤 밖에 안자고 여기서 계절학교 또 해야하는데 제가 쉴 수가 없잖아요?
힘들겠지?
제가 방해 안 되게 모둠을 왔다 갔다 하면 안될까?"
다른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놀겠다는 건데
상황을 이해하고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폭을 가늠해보고
그리고 상대를 설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상설학교 아이들이 그렇게 열심히들 말을 하지요.
예(여기) 아이들, 참 잘 살아가는 구나 싶데요...
계자 아이들 들어오니 상설 아이들도 덩달아 그리웁네요.

'나는 내 어린 날에 만났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우리 아이들도 그러할 것이다.'
요즘 날마다 생각하는 무서운 진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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