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 하나 갖다 놓으면

힘 안들이고 별을 한가득 담아갈 수 있는 이곳이다.

풀을 매고 매고 또 매며 풀물이 뚝뚝 떨어지는 산마을에

꽃처럼 또 사람들이 피어난다...


정환샘이 길이 너무 멀었나보다.

차를 가지고 와도 해남에서 짧지 않을 길,

대중교통은 더 복잡하다.

정작 연어의 날 전 일정에는 참석 못해도

오늘 밤에라도 와서 내일 오전 나가겠다던 걸

결국 중간고사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일에 잡혀 있었다.

시골 중학교의 새내기 교사에게 맡겨진 잡일도 적잖을 터.

안좌도의 화목샘과 올 여름 계자에 밥바라지에 붙겠다는 그이니

곧 볼 거라 그나마 아쉬움 덜한.

연어의 날, Homecoming Day, 이런 날이라도 있으니

그간 소식 드물었던 이들이 걸음 못해도 줄줄이 연락 닿는다.

그러면 또 되었다, 우리 서로 잊히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여진샘이 들어와 학교아저씨와 아고라 풀을 뽑다.

준한샘도 마무리 하고 있던 돌탑의자에 돌 몇 올려주고 가시었네.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그 일당 가객 승엽샘과 미친꽃 초설샘 들어오시다.

이생진 선생님은 올해도 아래위 공간에 화장지를 넣어주시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죽음>도 선물로 건네주셨다.

장에 다녀오니 벌써들 아는 곳이라고 달골 햇발동에서들 쉬고 계셨네.

이생진 선생님도 으레 쓰시던 시방에 짐 쫘악 풀어놓으시고.

“선생님, 이번에는 이 방 아니야!”

사이집을 내놓다.

한 1년은 수행하며 길을 낼 집중명상센터,

아직 사람들에게는 공개하지 않고 있는 공간이다.

이생진 선생님이니까 내놓는 집이다.

선생님이 좋다, 참 좋다.

아버지이고 스승이고 ‘어른’인 당신이라.

재밌고, 정갈하고, 곧고, 따뜻하고, 성실하고, ...

곧 열화당에서 생의 마지막쯤의 시집이 될 거라는 원고를 마무리하느라

여념 없는 선생님은 다락방에 책상 놓고 자리 잡으셨다.


승엽샘과 초설샘은 사이집의 아랫층 거실로 쫓겨 내려오다.

승엽샘은 내일 고창에서 행사 있어 넘어갔다 다시 돌아오실 거라지.

기표샘은 인사동 시낭송에서 승업샘을 가리키며 누구냐 물은 적 있다,

멋있다고.

그래서 또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당신일세.

초설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면서도

말은 그러고 손은 보탠다. 거짓말쟁이다.

그는 남자인데 여전히 안에 여자가 산다.

일은 아주 전천후다.

이 공간을 알고 여기 일을 아니

당장 학교의 전나무 사이 낡은 룽따 사이에 새 룽따부터 걸어주었더라.

초설이 좋다, 초설 저는 잘 모를 일이겠지만.

그는 집중에 약하나 대신 넓다.

언어 감각이 아주 좋은데 그걸 다 늘여놓는다.

집중하면 너무 어마어마할까 봐 그런 갑다.

그는 또 뒤에서 표도 안 나는 일들을 도울 것이다.

저캉 나캉 또래라고 막 부르고 막 대하는 듯해도

서로에게 있는 존중과 신뢰를 알지.

떠돌아서 원이 풀려야 살 수 있는 그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머물면 시들 그이라. 시들지 않으려 시 쓰는 그이라.

좋은 시인은 시인이기 이전 좋은 사람이라.

그래서 그의 시를 기대한다,

가끔 좀 못 쓴다고 구박을 하고는 하지만.


점주샘과 장을 보러 다녀오다.

영호샘이 목발을 짚고 나타나 곡주를 사주었네.

어째 못 올 일이 생겼다더니...

그렇게들 마음이 닿는 연어의 날이라.

뭐라도 보태겠다던 이들 이름자와 필요한 물품들을 적어

가마솥방에서 제비뽑기를 하였더라네.

세아샘과 무범샘과 근수샘-각 쌀 20kg(도마도 만들어 온다던 세아샘)

유설샘-마른 안주거리

현우샘- 쥬스 상자

원규샘-샐러드(양상추며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재훈샘-화장지

상찬샘과 주훈샘- 소주와 수박과 식빵

여진샘 휘령샘-식빵

연정샘- 막걸리

점주샘- 부엌 기본 채소와 양념

...


연어의 날은 그런 마음과 손발들이 만들어갈 날이라.

마을 이웃들 몇에게도 저녁 드십사 기별하였네.

그러는 사이 점주샘은 가마솥방 부엌 선반을 다 닦아 놓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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