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4.달날. 맑음

조회 수 579 추천 수 0 2019.08.13 11:38:17


천막을 걷었다. 잔치는 끝났다.

사람들 간 자리 정리하고

부엌에 나와 있던 그릇들을 창고에 넣고

치워져 있던 교실 물건들도 제자리로 보낸다.

다음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

사람은 가고 쓰레기는 남으니까.


또 한 친구를 곧 장가보낸다.

보육원 아이들도 자라고 혼인을 한다.

그 아이들이 다시 보육원을 가는 일은 드물어도

물꼬에는 여전히 걸음을 한다.

엄마로 부모 자리에 앉거나

어른으로 주례를 서 달라 부탁해 왔다.

그 아이 다섯 살에 만났다.

위로 누나도 둘 같이 있었다.

요새는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도 고아는 드물다.

대개 연고가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그 부모가 다시 데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이들은 영영 부모 소식을 몰랐다.

고맙게도 견실하게 잘 커서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 크는 동안 간간이 물꼬에 와서 보냈을 뿐인데,

해준 것도 없이 부모로 혹은 어른으로 설 영광이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연어의 날이 끝나고 몇이 남았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 일당(ㅎㅎ) 승엽샘과 초설도.

이생진 선생님은 속이 불편해서 아침을 걸렀으면 하셨다.

야채죽을 끓였다.

끓여놓으니 너도 나도 한 번 먹잔다.

“밥 있잖아!”

그래놓고 덜어준다.

“죽이 뭔지 알어?”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라네. 내참...

또 실없는 승엽샘의 소리, 아재 개그다.


이생진 선생님 일당도 보낸다.

여기 오면 내내 밥 얻어먹는다고

옥선생 부엌에서 떠나게 하자며 황간으로 나가 밥을 사시는 선생님.

머리가 긴 승엽샘, 손끝이 여성 같은 초설, 그리고 이 여자,

여자 셋 거느린 선생님이시라 농을 하며 유쾌한 밥상 되었다.

나는 내 안에 남자 사는데... 하하.


하얀샘이 정리를 도와주러 들어왔다.

교문의 현수막부터 떼 주었다.

달골로 올라 아침뜨樂 미궁의 느티나무에서 아래로 물도 주었네.

그야말로 남은 식구 셋이 늦은 저녁밥상에 앞에 앉았다.

인사도 남았고, 정리글도 남았지만,

사람들이 다 나가고 비로소 연어의 날이 끝났을세.


앗! 오늘부터 마을 수도를 아침저녁 한 시간만 공급하기로 했단다.

가뭄 오래였다.

아이들 드나드는 곳이라고, 혹 물 사정 안 좋을 때 곤란할까 하여

학교 부엌에는 늘 예비로 채워두는 커다란 물통 하나 있다.

덕분에 꼭 물이 나오는 시간에 얽매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사람 많았던 어제도 아니고 오늘이어 얼마나 다행한가.

고마운 삶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954 2014. 5.10.흙날. 맑음 옥영경 2014-06-04 671
4953 2014. 9.16.불날. 맑음 옥영경 2014-10-15 671
4952 2014. 9.15.달날. 맑음 옥영경 2014-10-15 671
4951 2015. 6. 2.불날. 맑음 옥영경 2015-07-08 671
4950 2015. 7.10.쇠날. 흐린 아침, 갠 하루 / 달골 공사 첫 삽 옥영경 2015-07-31 671
4949 2015. 7.12.해날. 흐리다 비, 그리고 바람 옥영경 2015-07-31 671
4948 2015. 9.11.쇠날. 구름 꼈다 오후 빗방울 옥영경 2015-10-07 671
4947 2015.10.28.물날. 맑음 옥영경 2015-11-23 671
4946 2015.11.21~22.흙~해날. 흐림 옥영경 2015-12-14 671
4945 2016. 3.14.달날. 맑음 옥영경 2016-03-31 671
4944 2014. 9.19.쇠날. 맑음 옥영경 2014-10-16 672
4943 2014.10.12.해날. 맑음 옥영경 2014-10-31 672
4942 2014.12.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5-01-04 672
4941 2015. 1.16.쇠날. 저녁 비 옥영경 2015-02-13 672
4940 2015. 3. 7.흙날. 맑음 옥영경 2015-04-04 672
4939 2015. 3.29.해날. 황사 옥영경 2015-04-28 672
4938 2015. 5.25.달날. 맑음 옥영경 2015-07-06 672
4937 2015. 8.30.해날. 맑음 옥영경 2015-09-26 672
4936 2015. 9. 9.물날. 맑음 옥영경 2015-10-07 672
4935 2015.10. 3.흙날. 맑음 옥영경 2015-10-31 67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