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4.달날. 맑음

조회 수 554 추천 수 0 2019.08.13 11:38:17


천막을 걷었다. 잔치는 끝났다.

사람들 간 자리 정리하고

부엌에 나와 있던 그릇들을 창고에 넣고

치워져 있던 교실 물건들도 제자리로 보낸다.

다음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

사람은 가고 쓰레기는 남으니까.


또 한 친구를 곧 장가보낸다.

보육원 아이들도 자라고 혼인을 한다.

그 아이들이 다시 보육원을 가는 일은 드물어도

물꼬에는 여전히 걸음을 한다.

엄마로 부모 자리에 앉거나

어른으로 주례를 서 달라 부탁해 왔다.

그 아이 다섯 살에 만났다.

위로 누나도 둘 같이 있었다.

요새는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도 고아는 드물다.

대개 연고가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그 부모가 다시 데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이들은 영영 부모 소식을 몰랐다.

고맙게도 견실하게 잘 커서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 크는 동안 간간이 물꼬에 와서 보냈을 뿐인데,

해준 것도 없이 부모로 혹은 어른으로 설 영광이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연어의 날이 끝나고 몇이 남았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 일당(ㅎㅎ) 승엽샘과 초설도.

이생진 선생님은 속이 불편해서 아침을 걸렀으면 하셨다.

야채죽을 끓였다.

끓여놓으니 너도 나도 한 번 먹잔다.

“밥 있잖아!”

그래놓고 덜어준다.

“죽이 뭔지 알어?”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라네. 내참...

또 실없는 승엽샘의 소리, 아재 개그다.


이생진 선생님 일당도 보낸다.

여기 오면 내내 밥 얻어먹는다고

옥선생 부엌에서 떠나게 하자며 황간으로 나가 밥을 사시는 선생님.

머리가 긴 승엽샘, 손끝이 여성 같은 초설, 그리고 이 여자,

여자 셋 거느린 선생님이시라 농을 하며 유쾌한 밥상 되었다.

나는 내 안에 남자 사는데... 하하.


하얀샘이 정리를 도와주러 들어왔다.

교문의 현수막부터 떼 주었다.

달골로 올라 아침뜨樂 미궁의 느티나무에서 아래로 물도 주었네.

그야말로 남은 식구 셋이 늦은 저녁밥상에 앞에 앉았다.

인사도 남았고, 정리글도 남았지만,

사람들이 다 나가고 비로소 연어의 날이 끝났을세.


앗! 오늘부터 마을 수도를 아침저녁 한 시간만 공급하기로 했단다.

가뭄 오래였다.

아이들 드나드는 곳이라고, 혹 물 사정 안 좋을 때 곤란할까 하여

학교 부엌에는 늘 예비로 채워두는 커다란 물통 하나 있다.

덕분에 꼭 물이 나오는 시간에 얽매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사람 많았던 어제도 아니고 오늘이어 얼마나 다행한가.

고마운 삶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54 11월 3일 물날 쪼금 흐림 옥영경 2004-11-13 1872
6453 8월 5-8일 이은영님 머물다 옥영경 2004-08-10 1870
6452 97 계자 네쨋날, 8월 12일 나무날 옥영경 2004-08-14 1869
6451 9월 16일, 바깥샘 도재모샘과 오태석샘 옥영경 2004-09-21 1866
6450 39 계자 열흘째 2월 4일 옥영경 2004-02-05 1839
6449 9월 26-8일, 방문자 권호정님 옥영경 2004-09-28 1831
6448 97 계자 닷새째, 8월 13일 쇠날 맑음 옥영경 2004-08-15 1823
6447 계자 여덟쨋날 1월 12일 달날 옥영경 2004-01-13 1821
6446 2015 여름, 160 계자(8.2~7) 갈무리글 옥영경 2015-08-13 1816
6445 학교 문 여는 날 무대 오르실 분들 옥영경 2004-03-24 1811
6444 2월 28-9일 : 영화 보다 옥영경 2004-03-04 1807
6443 3월 21-2일 주말 옥영경 2004-03-24 1805
6442 2007.12.14.쇠날. 맑음 / 학술제가 있는 매듭잔치 옥영경 2007-12-29 1801
6441 가족 들살이 하다 옥영경 2004-02-20 1801
6440 5월 5일, 우리들의 어린이날 옥영경 2004-05-07 1800
6439 6월 19일, 월남쌈 옥영경 2004-07-03 1795
6438 116 계자 닷샛날, 2007. 1.11.나무날 / 바우산 옥영경 2007-01-16 1793
6437 박득현님 옥영경 2004-01-06 1788
6436 새해, 앉은 자리가 아랫목 같으소서 옥영경 2004-01-28 1786
6435 영동 봄길 나흘째, 2월 28일 옥영경 2004-02-29 178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