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이다.

‘아침 같이 할까요?’

문자가 들어왔다.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물꼬의 바깥식구 하나이다.

품앗이일꾼이기도 하고 논두렁이기도 한.

떡을 사왔다. 죽을 사려 하였으나 죽집이 문을 열지 않았더라는.

비 내리는 산마을 일상은 들이 집안으로 들어온 날.

오전은 책상 앞에서 하는 일들로 채운다.


이 여름에 자주 미는 칼국수이다.

준한샘 기락샘이며 밖에서들 들어온 이들 모였다.

시카고에 살 적 외국 친구들과 같이 칼국수를 만들어먹던 날

그 이름 때문에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칼로 만들어?”

반죽을 펼쳐내어 면을 부엌칼로 썰어 뽑기 때문에 칼국수일 테지.

국수처럼 면을 삶아내어 국물에 마는 게 아니라

국물에 면을 처음부터 넣고 삶기 면 속의 전분으로 국물이 걸쭉하게 된다.

그래서 칼국수의 정식 영문 명칭을 Noodle Soup이라 했을 듯.

일본이라면 호우토우 우동이 칼국수랑 비슷하겠다, 미소국물에 끓인.

중국은 도삭면, 즉 '칼로 썰어 만드는 국수'가 있다던데.

면을 만드는 방법으로 치자면 수공면(手工面, 쇼우꽁미엔)이겠지.

땀 흘려 반죽하고 냉장고에 30여 분 넣어뒀다 꺼내

방망이로 밀고 칼로 썬다.

여름날엔 애호박을 채썰어 얹지.

딱 대해리표 여름 칼국수,

콩나물국밥, 잔치국수, 시래기국밥, 골뱅이소면무침처럼 물꼬의 대표 음식이라는.


해금이다. 가뭄으로 아침저녁 한 시간으로 제한급수하던 수돗물이었다.

펑펑 나오지.

그 물 반가워 싱크대며 그릇 엎는 바구니며 박박 씻는다.

부엌 바닥 청소도 얼른 한다.

구석의 묵은 먼지, 하루 이틀 사흘 그리고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그렇게 여러 달이 쌓였을 것이다.

작년 한 해를 비우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걸레질을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장판 겹쳐진 곳을 일일이 빡빡 닦지 못했더랬다.

장판 끝 접착제가 밀려나와 꼬질꼬질하고 시커멓게 뭉친 것들,

칼로 벗겨내고 걸레로 닦지.

개운하다.

물이 고마운 또 하루였더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14 2019. 7.18.나무날. 도둑비 다녀가고 흐림 옥영경 2019-08-17 635
5013 2019. 6.10.달날. 밤비 아침에 개고 가끔 구름 / 돌을 쌓다 옥영경 2019-08-05 636
5012 2019. 7.29.달날. 맑음 / 삼남매의 계곡 옥영경 2019-08-22 638
5011 2024. 1. 4.나무날. 새벽 싸락눈 옥영경 2024-01-08 638
5010 2019. 8.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9-08-22 639
5009 2015. 7.13.달날. 갬 옥영경 2015-07-31 643
5008 2019. 7. 3.물날. 맑되 잠깐 구름 /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공명) 옥영경 2019-08-14 643
5007 2015. 2. 6.쇠날. 맑음 옥영경 2015-03-10 644
5006 2019. 9.20.쇠날. 흐려가는 오후 / 굴착기 옥영경 2019-10-30 647
5005 2019.11. 9.흙날. 오후 흐림 / 바짓단 옥영경 2019-12-30 647
5004 2021. 3. 6.흙날. 흐려가는 하늘, 는개비 다녀간 오후 옥영경 2021-03-26 648
5003 169계자 닫는 날, 2022. 1.14.쇠날. 맑음 / 잊지 않았다 [1] 옥영경 2022-01-15 648
5002 2014. 5.21.물날. 맑음 옥영경 2014-06-13 649
5001 2019. 5.15.물날. 맑음 / 생의 최대 수혜는... 옥영경 2019-07-19 649
5000 5월 물꼬stay 이튿날, 2019. 5.18.흙날. 비 옥영경 2019-07-19 649
4999 5월 빈들 이튿날, 2019. 5.25.흙날. 다소 흐림 / 느티나무와 홍단풍 모시다 옥영경 2019-07-24 650
» 2019. 6.29.흙날. 비 / 칼국수를 노래함 옥영경 2019-08-14 649
4997 2019. 7. 4.나무날. 맑음, 날씨 좀 보라지! / 제도학교의 물꼬 나들이 옥영경 2019-08-14 650
4996 5월 빈들 여는 날, 2019. 5.24.쇠날. 맑음, 31도였다나 / 열두 마리 버들치! 옥영경 2019-07-24 651
4995 2015. 1.31.흙날. 흐리다 눈 옥영경 2015-02-26 65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