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막 들어서면 왼편으로 상상아지트라는 공간이 있다.

찻방을 만들고 싶었던 공간으로

2004년 상설학교로 문을 열고 그 첫해 대목 준영샘이 아이들과 지었던 것.

낙엽송껍질을 벗기며 손에 박힌 가시로 얼마나들 고생을 했던지.

거기 구들 놓는 무운샘이 합판으로 인 지붕 위로 물고기 비늘모양을 시멘트로 덧댔다.

다시 어느 해 민족건축인협의회에서

거기 아지트의 기능을 더하며 상상아지트라는 이름을 얻었더랬다.

(지금은 세상 떠난 양상현교수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었네. 다시 삼가 고인의 명복을.)

숨꼬방이 새 목공실로 바뀌면서 상상아지트로 숨꼬방의 기능을 더하고 싶었다.

뭔가 일정이 진행될 때 그걸 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도 있잖은가.

그때 가서 차도 마시고 눕기도 하고 음악도 들을 수 있는 숨꼬방.

하지만 세월만 가고 있는 사이

그곳은 임시 창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연어의 날을 준비하며 눈에 걸렸으나 결국 정리를 못하고 지났더라.

오늘은 그곳을 치운다.

물꼬는 행사 중심의 삶이 아니다.

일상을 견지(堅持)해내는 것이야말로 물꼬 식의 삶.

견지, 쓰고 나니 어려운 말이네.

'굳게 지님'을 말하리.


학교 아저씨가 상상아지트를 정리하는 동안

나는 넘의 집 밭에 들다.

멀리 차를 타고 가서.

원정 풀매기.

요새 농촌 인력부족으로 아주 먼 곳에서 풀을 매러들 온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었네.

물꼬에 손발 보태준 이의 일터에 품앗이로.

그가 물꼬 일을 거드는 동안 적어도 하루는 그네 일을 하러 가야지 했다,

물꼬의 이웃들 밭에 들듯.

그 밭에 난 것들을 얻어먹으며 못해도 한 해 한 차례는 밭에 들지 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 둘과 일을 했다.

잔디 사이 풀을 뽑는 것이었는데,

이네가 잔디와 풀을 구분을 못하네.

그 풀이란 게 잔디인 척하고 붙어있으니...

설명을 하고 먼저 보여주기를 여러 차례,

그래도 별 나아지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하루해는 졌다.

마지막에는 소나무 전지도 하였네.

모양을 다치지 않으면서 전지하는 법도 배웠으니

이제 물꼬 나무들도 그리하겠다 덤비겠으니.


이런 일들에는 그저 알아서들 볼일 보려니 한다지.

세상에나! 거개 여성노동자들일 것인데...

불안 불안하며 키 큰 풀들 사이로 가서 볼일을 보네.

나중에 대표께 말씀드려야겠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화장실을 어찌 사용할 수 있는지,

설혹 그곳이 풀섶이라할지라도,

미리 안내하면 좋겠다고.

그것이야말로 이 업체가 다른 곳과 차별성을 갖는 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지 않던가.

더구나 이건 인권문제로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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