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꿈한 하늘이다.

아이들이 온다!


새벽, 밥못의 낮아진 수위에 물을 끌어올려 넣다.

더울 땐 출렁이는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더위가 한풀 가셔지기도.

밥쌀을 담가놓고,

비빔밥을 위해 무채를 썰어두고.

아침 7시 창고동에서 샘들의 해건지기.

아이로 물꼬에 왔던 쌍둥이 하나인 세인샘이

처음으로 교사로서 수행에 함께한다.

아이들을 돌보는 마음을 위해서도 하지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하는 절이라.

창고동을 쓸고 닦고 나와 학교로 들어섰다.


앗, 예정보다 아이들이 조금 일찍 오다.

정수기의 맥반석이며를 씻을 무렵이었다.

“오느라 애쓰셨으니 좀 쉬고 시작할까요?”

부려진 아이들이 학교를 구석구석 누빈다.

저리 돌아다니기만 해도 좋을 하루라.

요새는 아이들이 너무 바쁘니까.

아이들을 데불고 들어온 네 분의 샘 포함 어른 여덟이

두 학교의 초등 저학년 서른아홉 아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지금 여기 자신을 붙들어두라는 의미로...”

네팔에서 왔던 팔찌를 하나씩 샘들한테 채워주었다.


아이들이 어디 가면 그곳에서 진행하는 것에 따라 뭘 많이 하니

여기선 좀 안 하고 쉬고 걷기로.

웬만큼 쉬어준 아이들을 이끌고 달골로 향한다.

맨발로 앞서 걷자 하나둘 따라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따뜻해요!”

“기분 좋아요!”

창고동 들머리에서 샘들이 물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달다. 물맛만한 게 이 여름에 어딨을까.


고새 한 녀석이 벌에 쏘였다.

“여기선 제 오줌으로 문지르라 해요...”

계자에서 수영장이라도 갔으면 그랬을 게다.

오늘은 그저 하루짜리 나들이 온 아이들이라.

우유를 꺼내고 얼음을 또한 꺼내 문지르게 한다.

다행히 금세 가라앉았다.

벌침에 크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는데, 다행하다.


달골 올라 아침뜨樂으로 들어선다. 아고라에서 다리쉼을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광장이라.

오줌똥 이야기는 필수다.

내 눈에서, 우리 집에서 사라졌다고 쓰레기가 똥오줌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길의 마지막까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책임지려는 물꼬이다.

“여러분들이 잘 누고 가는 똥오줌이 거름이 되어 논밭에서 먹을 것들을 키웁니다.”

다시 달못으로 아가미길로 미궁으로, 그리고 밥못으로 걸음은 옮겨지고,

꽃그늘길을 지나 아침뜨樂을 빠져나온다.


“또 쉬어요!”

그래, 그래서 준비했지.

창고동으로 들어선다.

귀한 대접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저 오렌지주스 한 잔씩만 마셔도 되었으리.

하지만

얼음이 든 투명컵에 시럽을 넣고 오렌지주스를 붓고 홍차를 달여 끼얹고

거기 각자 따서 들어온 민트 잎을 띄운다.

이맘 때 물꼬에서 즐겨 마시는 떼오 오랑주라

“꼭 흔들어서 마셔야 해요?”

아니지, 위에서부터 그 맛을 즐겨도 되리.

너희들은 귀하다, 우리는 다 귀하다,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 순간이었다.

다식으로 넛츠들을 먹다.

밥 때가 지나고 있었다. 속을 비우는 게 밥을 더 맛나게 할 것이나

긴 길을 뜨거운 해 아래 또 걸어야 하니 먹이는 게 옳을 게다.


춤명상도 판소리도 잘라먹었다.

그게 더 중요했으면 그걸 했겠지.

처음 나들이가 논의되던 무렵엔 학교를 중심으로 움직이겠다 하였으나

이만한 날씨라면 달골까지 못 갈게 무언가,

아침뜨樂 걷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고 결정한 일정이다.

내려와 잠시 쉰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들어왔다.

비빔밥과 어제 이웃에서 들어온 자두가 후식으로 나왔다.

“수박은 시냇가에서 먹어요!”

수박화채를 후식으로 만들어 먹으려던 건 그렇게 대체 되었다.

먹은 그릇은 밖에서 밀가루 푼 대야에 닦고 헹굼 대야 몇을 거쳐

바구니에 담겨서 볕 아래 말려졌다.

예섭이가 아팠다. 멀미라도 했던 걸까.

누워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배를 쓸어주었다.

“좀 쉬어보고 속이 어떤지 살펴보자.

죽을 준비해줄 수도 있단다.”

비빔밥을 조금 먹겠다고 했다.


헐목, 대해리 들머리로 옮겨갔다.

마침 아이들이 타고 들어온 버스가 있었잖아.

거기 벗이자 물꼬의 논두렁 한 분이 계곡을 끼고 펜션을 한다.

긴 시내를 따라 사이 사이 돌 둑을 쌓아 잘 정리해 놓은 공간이 있다,

평상도 여럿 늘어서 있는.

아이들이 뛰어들었다.

함께 들어가 옷을 흠뻑 적셨네.

말짱해진 예섭이도 잘 놀았다.


“이제 가자!”‘

“더 있으면 안돼요?”

버스는 3시에 떠나기로 했더랬다.

젖은 옷을 갈아입을 옷가지까지 준비하고 있는 공간이 어디 흔하던가.

세인샘과 희중샘이 물꼬 옷방에서 옷들을 챙겨오다.

“이거 어떻게 돌려줘요?”

“굳이 여기까지 가져오지 않아도

마음에 들면 입거나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눠주렴.”

또 어딘가에서 잘 나눠지리.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수박을 쪼개 먹는 사이

한 쪽에서는 네잎 토끼풀을 종이에 놓여 비닐에 넣고 있었다.

귀한 사람들, 좋은 일들 많으라는 바램을 담아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전해졌다.

그러고 보면 물꼬는 참 고전적이다...

잃어버린, 잊혔던 지나간 시간들의 정감을 이렇게 되찾고는 한다.


진옥샘이 아이들 다칠세라 날카로운 바위를 안고 꼼짝 않고 서 계셨고,

아이들 움직일 때마다도 맨 뒤에서 챙긴 당신이었네.

영주샘이 먼저 와 봤다고 뒷배로 움직여 주시다.

희중샘과 세인샘이 기차 시간에 이를 때까지 손을 보태다.

설거지를 다시 해서 그릇을 엎어두고,

달골에서도 떼오오랑주를 마신 흔적들을 치우다.

바닥에 흘러 끈적끈적하기도.

투명컵도 다시 바로 쓸 수 있도록 씻어 엎고.

찻자리를 치운다.


저녁 6시 한 할머니께 밥을 싸들고 간다.

하나 남은 자식이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그 속이 어떨 것인가.

같이 밥 한 끼 먹자고 했다.

무생채를 아주 달아하신다.

사람 사는 정이 별 거던가, 이렇게 이웃이랑 밥 한 끼 나누는 일이라.

물꼬가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한.

고즈넉해진 물꼬로 물꼬 품앗이이자 논두렁인 샘 하나 찾아들어

저녁밥을 먹는다.

고마운 일들이다.


노닐다 간 아이들은 잘 자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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