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다.

이 산마을조차 무더웠다.

낮에 잠깐 달골 대문 들머리 나무 그늘 아래 작은 도랑에 들어 발을 담갔네.


가마솥에 호박죽을 끓였다. 홍대를 넣고 찹쌀가루를 넣었다.

한 노모에게 보내다.

올 봄학기 물꼬가 받는 도움이 큰 어르신이라.

그렇게라도 인사를 했네.


준한샘이 학교 본관 앞 꽃밭의 단풍나무 가지를 쳤다.

와! 그 기술이라니.

수형을 유지하며 그리 만들어낼 수 있다니.

본관 창을 덮고, 옆의 나무와도 엉켜 답답했더랬는데.

참말 아름다웠노니.


마을의 한 형님이 깻잎을 나눠주었다.

새벽 5시 밭에 들어가 정오에야 나온 그의 손은

엄지와 검지가 새까매져 있었다.

“같이 가시지...”

“교장샘 바쁘잖아.”

수박을 답례로 나누네.

“아이고, 수박 값 절반에도 못 미치겠네.”

받는 길은 받는 길, 드리는 마음은 드리는 마음의 길이지 않겠는지.

“양파 깔고 양념간장 만들어 졸여놔.”

마을 어르신들은 아직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을 것만 같은 20대에서

몇 발자국 지나지 않은 이로 나를 보시는?

계자에서들 잘 먹을 밑반찬 하나 되겠네.

이 일은 언제 하나...


걷기여행 책을 내려는 출판사에서 온 메일을 연다.

출판사가 사랑하는 디자이너 한 분께 이 책의 디자인 작업을 의뢰해두고 있었더라지.

“책을 사랑하고, 마음이 맑고, 디자인도 좋은 분이에요.

저자 선생님 이야기를 죽 들으며, 그분이 저자 선생님 성함이 혹시?? 하고 묻더라고요.

그리고 선생님 존함을 들으며 정말 깜짝 놀라고 반가와했습니다.”

세상에! 그를 기억한다, 태정이와 보원이와 윤선이가 있던 탱자모둠!

1994년 여름의 물꼬 계절자유학교 원년 멤버들이이기도.

설악산으로 첫 계자를 떠나던 버스에서의 그가 생생하다.

내 나이 스무 대여섯 살 때이니 천지를 모르는 젊은이였다.

내가 만난 숱한 아이들 가운데 단연 몇 손가락에 꼽히는 고운,

그리고 퍽 사랑한 아이, 그때 초등 6년이었으니

그와 내 나이차이래야 열두어 살?

마흔 줄에 이르렀을 그이다...

좋은 곳을 통해 만나게 되니 반갑기 더하다마다!

참으로 그리운 그니.

“저희도 이런 인연이 다 있나!!! 너무 깜짝 놀랐습니다.

(...) 선생님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선생님과의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손을 꼭 잡고,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하며 감격해했어요.

이 책은 이렇게 많은 의미와 인연으로 탄생 되려나 봅니다.

선생님의 교육철학을 담은 더 많은 책도 꼭 이곳에서 출간하시면 좋겠다고,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옥 선생님이시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희도 같은 소망이고요^^”

메일은 이렇게 끝났다.

“세상은 참 재미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품은 인연, 소망은 희한하게도 결국 내 곁에 찾아옵니다.

그런, 삶의 이치가 참 대견합니다.”

삶의 이치가 참 대견하다는 그 문장이야말로 대견하였나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614 ‘2022 연어의 날’ 여는 날, 2022.6.25.흙날. 오려다 만 비 옥영경 2022-07-13 615
1613 2020. 4.16.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0-06-15 615
1612 2019. 6. 8.흙날. 구름 조금 / 보은 취회 옥영경 2019-08-04 615
1611 2020. 3.18.물날. 맑음 옥영경 2020-04-13 614
1610 2020. 2.19.물날. 맑음 옥영경 2020-03-19 614
1609 2019 여름 산마을 책방➂ (2019.8.31~9.1) 갈무리글 옥영경 2019-10-12 614
1608 2019. 7.24.물날. 가끔 해 / 깻잎 깻잎 깻잎 옥영경 2019-08-22 614
1607 2019. 6.18.불날. 아주 가끔 무거운 구름 지나는 옥영경 2019-08-07 614
1606 2019. 5.22.물날. 맑음 / 삽질 tip 옥영경 2019-07-24 614
1605 2023. 8.18.쇠날. 저녁 빗방울 좀 / 어린이 문화라고 하면... 옥영경 2023-08-20 613
1604 2021. 6. 6.해날. 맑음 / 한계령-끝청-중청-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계곡, 20km 옥영경 2021-07-06 613
» 2019. 7.23.불날. 가끔 해 / “삶의 이치가 대견하다.” 옥영경 2019-08-22 612
1602 2019. 7.27.흙날. 아침 볕 잠깐, 다시 비, 흐림 / 긴 그림자 셋 옥영경 2019-08-22 612
1601 166 계자 이튿날, 2020. 8.10.달날. 비 옥영경 2020-08-14 611
1600 2020. 2.12.물날. 비 / There is time! 옥영경 2020-03-12 611
1599 2019. 7. 6.흙날. 가끔 해를 가리는 먹구름 /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스코트 새비지/나무심는사람, 2003) 옥영경 2019-08-16 610
1598 2019 여름 청계 여는 날, 2019. 7.20. 흙날. 비 옥영경 2019-08-17 608
1597 2021. 9.21.불날. 비 내리다 오후 갬 / 한가위 보름달 옥영경 2021-11-18 607
1596 2019. 6. 1.흙날. 다소 흐리더니 맑음 옥영경 2019-08-02 607
1595 ‘2020 연어의 날’ 닫는 날, 2020. 6.28.해날. 흐린 저녁답 옥영경 2020-08-13 60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