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두멧길 어둠 속을 세 아이와 어미를 앞세우고 걷는다.

맨발로 딛는 발바닥은 장마에 푹 적셔진 땅을 오롯이 읽는다.

윗마을 돌고개로 가는 작은 사이 마을의 펜션 하나가 아래위층 휘영청 불을 밝히고,

손님들이 굽는 고기 연기가 어지러우나

비 내린 산마을의 고요를 해치진 않는다.

저녁 8시 밥상을 물린 뒤였다.

흐린 하늘은 어둠을 빨리 불렀으나

별 거둔 밤이어도 눈이 익으니 칠흑은 아니었네.

아이 셋이 저만치 먼저 뛰어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땀에 흠뻑 절였다.

가로등에 아이들 그림자가 길었다.

아이 셋만으로도 산골짝이 꽉 찬다.

존재의 힘, 아이들 존재는 그런 것이다!


유설샘네가 며칠 왔다.

해마다 6월 물꼬 행사에 빠지지 않았던 그네나 올해는 그렇지 못했다.

건어물이며 견과류며 곡주 안주에 넉넉할 마른 것들이

그 가족 대신 지난 연어의 날에 출석했더랬네.

어느새 4학년이 된 소울이는 아직도 집을 떠날 생각을 절대 안 한다 하니

여름 계자에서도 못 보니 올 여름은 아쉬울까 했는데

기차 타고 이리들 와 주었네.

유설샘과 미루샘과 물꼬의 품앗이일꾼이었고,

그들이 혼인을 하고 그 혼례에 주례를 섰더랬다.

그리고 이어 태어난 아이 셋,

막내 소미가 여섯 살이 되었다.

마침 들어와 있던 기락샘이 실어왔다, 어린 것들 버스까지 타면 힘들다고.

요새 자주 영동역 물꼬 간 셔틀 노릇이 잦은 그니이다.


홍차를 내려 떼오 오랑주와 찰보리빵으로 간단한 요기를 하고,

저녁 밥상에 앉았네.

갓 따온 호박으로 국을 끓이고 엊그제 이웃 형님이 준 깻잎 졸인 거며

요새 넘쳐서 제 값 못 받는다지만 맛은 더 좋은 양파장아찌며

뭐라도 하나 챙겨온다고 유설샘이 해온 반찬에...

밥을 먹는 사이 단호박죽도 끓였다, 아침으로 먹으면 좋겠다 하고.

하얀샘이 빻아다 준 찹쌀가루와 역시 그가 사다준 홍대(붉은 큰 팥)를 불려 삶아 넣은.


혜정샘의 연락이 들어왔다.

새로 태어난, 벌써 돌이지만, 둘째 아이 인사 시킨다고,

계자에 들어오는 날 부산한 영동역에서 첫인사 드리고 싶지 않다고

계자 준비로 바쁠 때지만 혹 내일 잠깐 살짝 찾아와야 되냐고.

여기 너무너무 습해서 사람 절대 오라고 못할 상황이나

아이가 인사를 온다는 데야! 서연이 동생 서진이라는 데야! 혜정샘네라잖어.

어여 어여 오시라 했네.

유설샘네랑 또 각별한 인연의 끈들이라.

그러니까 유설샘의 후배가 소정샘, 소정샘의 언니가 혜정샘.

유설샘과 혜정샘이 물꼬에서 만나도 좋겠네.


164 계자 밥바라지 1호기 정환샘의 전화.

안부 겸 가마솥방 상황(계자를 위해 물꼬에 챙겨오면 좋을 만한 것들?) 궁금해서 한 연락.

오랜만의 방문이라 감이 많이 없다면서.

교사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내게 배움을 주는 한 청년.

저이를 교사로 둔 학교의 아이들은 또 얼마나 복일 것인가.


아침에 해가 반짝 났었기 반가워라며

햇발동 베란다며 현관이며 다 열어놓고

차의 바닥깔개도 빨아 척척 걸쳐두었는데,

너무 부지런한 것도 때로 주책이라

그만 비 다시 쏟아진 한낮이었댔네.

다시 멈추기는 하였으나 습을 묵직하게 머금은 공기라.

열한 살 소울이가 밤마을을 걷다 그랬다, 공기가 안 좋다고.

무겁다는 말이겠다.

습을 머금은 공기이니.

장마다, 장마 같은 장마.

이 맘 때면 어김없이 하는 생각이

사람이 죽으란 법 없다는 어르신들 말씀이었다.그 말이 또 나를 살려온 문장 하나였댔지.

장마에서 만나는 볕이 그러했네, 결국 걷히는 장마가 그러했네.

곧 물러날 장마라.


장마라도 마음이 뽀송하지 않을 건 뭐겠는가.

어디나 스몄을 물기이나

마음에는 볕들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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