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선곡도 좋은 클래식 FM이었네.
오늘은 여럿과 앉아 여행이 화제였다.
다른 계절이라고 여행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여름이면 흔히 휴가여행을 가야하는(!) 줄 안다.
언제부터였을까.
외국 한 번쯤은 가주어야 하고
가족여행은 필수이고
대학생이면 유럽여행 한 번쯤은 가야하고,
뭘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게 많아졌나.
지난 해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곁에서 한해를 보낼 때
주에 몇 차례나 수십 명씩 다녀가는 한국인을 보고 놀랐다.
이것도 있어야 하고 저것도 있어야 하고 그런 물건사기처럼
여기도 가봐야 하고 저기도 가봐야 하고.
이쯤이면 여행 강박관념이라 할 만하다.
여행 많이 하면 세계관이 달라진다?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만으로도 세계관의 변화가 올 수도 있다.
여행이라기보다 유명지를 찍는 관광.
물론 그것만도 의미가 왜 없을까.
하지만 마치 여행(사실은 관광이면서)만이 세상 보는 눈을 밝히는 양,
일 년에 책 한 권 채 읽지도 않으면서 크게 말한다.
잦은 여행이 정말 사고를 깊게 하는가.
방에서 혼자 책 읽고 영화 보면서 사고가 깊어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무리 여행해도 자기 사고 안에 갇힌 사람도 있을 테지.
지금의 여행 강박이 자기 관리라고 이름하는,
예컨대 주름이 마치 죄악인 양 각종 시술과 클리닉을 좇아다니는 것 같은 모양은 아닌가.
휴가의 방법은 많다.
여행은 그 한가지다.
방에서 뒹굴 수도 있고,
도서관을 서성거릴 수도 있고,
산을 오를 수도 있고,
의자에 앉아 해를 따라 그 의자를 그저 조금씩 움직일 수도 있고.
쉼도 다양했으면, 주체적이면 좋지 않을지.
남자 한 분이 아내의 휴가여행 타령에 짜증이 섞여 있다.
봄가을로 연휴면 애들 데리고 꼭 가는데,
당신이 젤 바쁜 여름철에도 가자해서 곤혹이라고.
“그런데, 가족여행은 그리 챙기시는데,
어머니 모시고는 안 가셔요?”
내가 그의 어머님을 아는 까닭이었다.
한참을 멈칫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한 번도 시골 계신 노모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단다.
그렇다면 아내 분이 그런 생각을 해줄 수도 있잖았을까...
누구를 욕하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혹 우리가 내 여행에서 잊고 사는 게 그처럼 있지 않는가
나도 돌아보고 있다는 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