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방 앞 소나무 가지를 잘랐다.

해우소로 가는 길에 자꾸 턱 하고 눈앞을 가로막아버리는,

저러다 누군가 눈이라도 찔리고 말지 불안했다.

얼굴이 찔리기도 여러 차례.

산발한 머리 같아서 모양을 다듬어주려는 까닭도.

조경하는 준한샘이 조언하기를 망설이지 않고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실패해도 다시 나니까.

망설이면 그만 고민이 들어가고 시간이 들어가고 길을 잃어버린다고.

머리를 자르던 때가 겹쳤다.

아이 어릴 적 남편과 아들의 머리(물론 머리카락이다)를 직접 잘라주었다.

미용자격증이 있다, 기술은 딸린다만.

미용업을 하는 선배를 불러내려

같이 한 해 두어 차례 이 멧골 할머니들 펌을 말고

할아버지들 머리를 잘라준 적도 있다.

미용을 배우는 동안 물꼬 식구들은 머리를 대주어야 했다.

실패해도 다행한 건 머리가 또 자란다는 거였다.

그것도 아주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세 해 동안 다른 나라 공동체를 돌아다닐 때도

아들 머리는 물론 그 공동체 아이들 머리를 잘라주기도 했다.

얼마 안 되는 여행 짐에 미용도구를 챙겨 다녔더란 말이다.

학교아저씨 머리를 잘라주었던 몇해 전이

머리를 만진 마지막이었다.

아하, 그게 이거였던 거다.

소나무가 번듯해졌다.

지난번 본관 앞의 단풍나무를 다듬어주던

준한샘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았던 게 도움이 컸네.


계자 후속 작업의 제일 큰일은 부모님들과의 통화다.

학부모이기보다 벗에 가까운 혜정샘과 수진샘과.

계자 끝내고 학부모랑 하는 전화가 오늘까지 이른.

물꼬의 고맙고 큰 지지자이기도 한.

우리 새끼들을 같이 키운다, 고마울 일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다.


164 계자에는 새끼일꾼이 둘이었다.

대개 대여섯이 함께하지만 이번에는 두 자리만 내놓았더랬다.

초등 계자의 시간을 지나 새끼일꾼으로 첫 걸음하는 둘이었다.

새끼일꾼도 밥값은 애들한테 업히지 말고 저들더러 내라 한다.

그들로서는 일꾼으로 돕는 거지만

물꼬로 봤을 때는 그들 역시 교육대상이기도 하고.

속내는 뭐 물꼬의 궁한 살림 때문이라.

한 분은 등록비를 보내고 또 보내왔다.

“저희애가 밥을 좀 많이 먹어요!”

그러셨다.

그런데, 다른 분도 또 배를 보내신 거라.

적으나마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하는 후원이라고 하셨다.

두 분은 서로를 모른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양 이러했다.

물꼬로 모이는 마음이 그러하다.

또 열심히 살아야지 싶더라.


저녁 8시 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 여름의 마지막 반딧불이일지도 모른다.

달골 도라지밭 가로 두 마리가 한참을 돌다 갔다.

밤새 비 내린다, 질기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14 5월 물꼬stay 이튿날, 2019. 5.18.흙날. 비 옥영경 2019-07-19 605
5013 2019. 9.27.쇠날. 해 나왔다 오후 사라진 / 두 발의 총성 옥영경 2019-10-31 605
5012 168계자 여는 날, 2021. 8. 8.해날. 소나기, 풍문처럼 지나다 [1] 옥영경 2021-08-13 605
5011 2019. 7.29.달날. 맑음 / 삼남매의 계곡 옥영경 2019-08-22 606
5010 2020. 2. 4.불날. 갬 옥영경 2020-03-05 607
5009 2023.11.12.해날. 볕 거둔 오후 옥영경 2023-11-19 608
5008 2019. 9.20.쇠날. 흐려가는 오후 / 굴착기 옥영경 2019-10-30 611
5007 2019. 7. 3.물날. 맑되 잠깐 구름 /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공명) 옥영경 2019-08-14 612
5006 5월 빈들 이튿날, 2019. 5.25.흙날. 다소 흐림 / 느티나무와 홍단풍 모시다 옥영경 2019-07-24 613
5005 171계자 사흗날, 2023. 1.10.불날. 흐림 옥영경 2023-01-12 613
5004 2019.11. 9.흙날. 오후 흐림 / 바짓단 옥영경 2019-12-30 614
5003 2019. 7. 4.나무날. 맑음, 날씨 좀 보라지! / 제도학교의 물꼬 나들이 옥영경 2019-08-14 617
5002 2022. 1.26.물날. 맑음 / 교육재정을 들여다보다; 풍요는 낭비가 아니다! 옥영경 2022-01-31 617
5001 2022. 8. 6.흙날. 맑음 / 170계자 샘들 미리모임 옥영경 2022-08-08 617
5000 2019. 6.29.흙날. 비 / 칼국수를 노래함 옥영경 2019-08-14 618
4999 2019.10.21.달날. 맑음 / 오늘은 오늘치의 삶을 살아냈고 옥영경 2019-12-05 619
4998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619
4997 5월 빈들 여는 날, 2019. 5.24.쇠날. 맑음, 31도였다나 / 열두 마리 버들치! 옥영경 2019-07-24 620
4996 2019. 6.28.쇠날. 저녁 비 / 원석연과 이생진 옥영경 2019-08-14 621
4995 2022 여름 멧골 책방② (8.27~28) 갈무리글 옥영경 2022-09-08 62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