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계자 나흘째, 8월 11일 나무날 비

조회 수 1139 추천 수 0 2005.09.06 15:36:00

106 계자 나흘째, 8월 11일 나무날 비

< 달골오름과 연극교실 >

이른 아침 고래방에서 해건지를 끝내고
우리는 어느 종교에서 그려놓은 천국의 그림처럼
안개 낀 달골을 올랐습니다.
하루씩 번갈아 가며 두 패가 학교 둘레 들꽃도 익히고
침묵하며 풀도 뽑던 지난 이틀의 아침이 있었지요.
오늘은 한 덩어리로 언덕 오름에 나선 것입니다.
긴 오름을 따라 갖가지 열매를 달고 출렁이는 나무들을 쳐다보다
길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뒤집어보고
호두도 으깨보고
대추도 툭 쳐보고...
그런 우리를 짙은 칡꽃향이 에워쌌지요.

아이들은 다닥다닥 달골에서 젤 높은 원두막에 들앉았습니다.
"이 곳 달골이 물꼬의 주요마을이 될 거다."
올 가을 아이들집과 갤러리(까페? 박물관? 강당?)가 들어서는 걸 시작으로
내년엔 더 위쪽 숲 속에 명상의 집도 들어서고,
달골이 머잖아 작은 마을이 되고...
원두막에서 물꼬가 지닌 앞으로의 십 여년 꿈,
2014년엔 대해리 일대가 생태공동체마을로 어떻게 자리를 잡아갈 것인지,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
달골에서 건너보이는 산 아래 오목한 2만평 땅이 '아이골'이 되고...
"인종 국가 장애를 넘어 아이들이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
2024년이며 거기 있을 겝니다..."
새로 열 세상 이야기에 눈 반짝이며
그게 어떤 의미일지,
정말 뭐가 되기는 할지 귀들을 기울이고 있었더랍니다.

저 아래 학교와 마을을 내려다 보다 원두막을 내려선 모두는
과일 나무 앞에 길게 늘어서서 복숭아 하나씩 따들고
실도랑물에 씻어 한 덩이 베먹으며 내려왔지요.
그제서야 참았던 빗방울이 걸음을 재촉하며 떨어졌더랍니다.

열리는 교실이 날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새로 점자공부도 생기고.
아, 다 좋다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 빨래를 걷어 찾아주고 있데요.
교실이 닫힌 아이들마다 보글보글방으로 찾아들더니
떡꼬치에 찐빵에 부침개에 팥빙수에
떡볶이에 수제비에 콩국수를 말아먹고 고래방으로 건너왔습니다.
연극놀이가 있지요.
옛 얘기 하나를 장마다 나눠 네 모둠이 모으기로 하였습니다.
하도 뛰어다니다 와서 지쳐 누웠는 녀석도 있고
서로 생각이 달라 내내 싸울 것만 같은 모둠도 보이고
잘 안된다 싶으니 의욕을 잃은 녀석들도 보이고...
연극이 되긴 하려나 싶더니
웬걸요, 펼쳐보이기를 하는데,
고래방에 새로 들인 음향과 조명이 한껏 살려준 분위기 덕도 컸겠지만,
며칠 같이 호흡했다고, 공연이라고,
하는 녀석이고 보는 녀석이고
무대 속으로 아이들이 빨려 들어갈까 우리는 겁내야 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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