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의 대해리 하늘,

그대도 담아가시라...

세상의 처음처럼,

그러나 뚫고 나오기보다 거기 오래 있었던 것이 발견된 느낌의 아침이었다.

이 풍경만으로도 오늘 하루 무슨 일이 닥쳐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아니, 여러 달쯤 겪는 고통도 어루만져질 것 같은.

‘그래서 또 대해리 산다’고 말할 수 있을.


아침뜨樂을 먼저 돌고 내려와 창고동에 들었다.

소정샘이 진행한 아침 해건지기였다.

요가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한 해를 안내자로 요가센터를 거들기도 하셨더라지.

물꼬에서 내가 진행하지 않은 수행이 퍽 오랜만이었다.

그대는 몸을 통해서도 그리 단단해지셨고나, 고마웠다.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뜨樂을 걸었다.

여름 풀을 어이 이기랴,

일 많은 이곳에서 사람 없는 이곳에서 너른 이곳에서

풀은 얼마나 기세가 등등했을까.

사람이 걷는 동선만 따라 풀을 벴고,

그것만으로도 누리기 모자라지 않았다.

엄마를 앞세우고 아이들이 달골 길도 걸어 내려왔다.

그 길에는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흙이 채운 아름다운 결이 숨겨져 있다,

오는 이들에게 풀어주고 싶은.

안고 마을로 왔으리.


아침 밥상을 물리고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었다.

안다, 우리는 정작 책방이 중심이었던 게 아니라

그저 그리 마주하고 싶었는 걸.

사람사이 ‘오해’가 화제였다.

날선 오해만이 오해의 얼굴이 아니다.

뭉툭하나 오래 어긋진 것들이 있기도 한다.

한 사람은 그것으로 관계의 소원을 부르고,

또 한 사람은 뒤늦게야 그 오해를 짚어본다.

그리고 오해로 마음이 다치기도 한다, 가한 사람이 없어도.

그 마음이 애정이 깊어 그럴 수도 있음에 대해 생각한다.

고마울 일이다, 사랑도, 오해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도.

그 무엇보다 물꼬가 뭐라고 사람들은 그리 사랑하는가, 놀랍고 고마웠다.

소정샘은 지난 마지막 방문에서 밀친다는 느낌을 받으셨더라나,

아구, 몰랐고나. 내게 고달팠던 시간이어 나만 보였던 건 아니었을까.

사람이란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고는 한다.

더 민감하게 살필 일이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에 게을렀다, 아시리라 하고 그저 살아오고 있었고나.


일곱 살이 되면 아이를 계자에 보내겠다 생각했지만

일곱 살이 되었지만 여름 계자는 지나갔다.

의사인 남편은 그이랑 물꼬에 대한 생각이 좀 다르다 했다.

가치체계 그런 거라기보다 그야말로 안전문제를 늘 걱정한다 했다.

(어떤 문제의 원인이 꼭 한 가지인 건 또 아닐 것이나)

안전이 문제라면, 오지 마시게.

세상일이란 게 그런 문제를 안고 있으면 꼭 그 같은 탈이 나더라.

그러면 원망이 생기게 되고.

뭐 하러 그리 무리하며 아이들을 보내겠는가.

어른들과 같이 오면 되지 않겠는지.

빈들모임도 있고, 산마을 책방도 있고, 물꼬의 오랜 바깥식구이니 그저 들러도 되고.’

그쯤의 말을 했나, 생각을 했나, 알리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나...

손에 들고 온 먹을거리들도 적지 않았는데

아이들 업고 지고 온다고 빈손이라며 굳이 또 봉투를 하나 놓고 갔다.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했고, 여럿의 선물들로 물꼬 곳간을 채워주기도 했던 그였다.

몸으로 단련된 시간들을 업고 이제 그 힘으로 나를 돕는다 싶으며 찡해졌다.

아이들 크는 동안 옷가지 하나 사주지 못했다, 나는.

다시 버스를 타고 그가 갔다...


본관으로 내려와 있던 빈백들을 다시 달골로 올리고

컵들이며 묵은 선반들을 청소하고

물을 못 쓸 상황을 대비하는 물통의 물도 갈고,

가마솥방을 나와 오후에는 민주지산 한 절집에 들리다.

지난 계자에서 소나기를 만났던 우리들이 스며들어 기댔던 곳.

3kg 꿀단지와 포장지도 뜯지 않은 수건 다섯을 챙겨갔다.

아이들이 타 먹었던 꿀차와 욕실에서 꺼내 썼던 수건 다섯을 그리 돌려드렸다.

스님은, 자꾸 나가니 힘이 분산된다는 느낌이시라며

이제 안에서 기도에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크다는.

절 살림을 좀 더 살피고, 공간도 넓히고 싶다시는.

물꼬의 아침뜨樂도 경행 공간으로 쓰시라 말씀드렸네.

그리 두루 나누자고 만드는 명상정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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