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아주 잠깐 볕인가 싶더니 다시 어두워진 하늘.


주중에 풀을 매고 청소를 하고 주말에 사람들을 맞는다.

오늘은 햇발동과 창고동, 사이집 둘레에 풀을 매다.

사이집 현관으로 이어지는 야자수매트에도

밭 삼듯 흙 삼듯 풀이 무성했다.

흐려 풀뽑기는 좋았네.


물꼬는 아이들의 학교이고 어른의 학교,

오가는 이야기들도 아이들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닌.

어느 이가 30년 결혼생활을 청산하려 한다.

큰 부잣집에 시집을 갔던 그였다.

이혼이 입에 오르는 최근

사이가 좋았던 시댁식구들이 제사에 참석한 그에게 데면데면,

그동안 맏며느리로 온갖 궂은 일 다 한 그인데.

제사상에 절만 하고 나오는 그에게 누구하나 밥 먹고 가라 하지 않았단다.

이 무슨! 밥은 먹고 가야지.

의리가 있어야지. 갈라설 때 갈라서더라도.

젊은 날 빛났던 그가 30년 세월에 후줄그레해졌다, 여전히 멋지나 그의 표현이.

삼십년 동안의 가족사진을 보며 스스로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고.

'결혼 전 사진의 저와 결혼 후 저는 완전 다른 여자더라구요.

처녀 때의 저는 뭔가 충만했어요. 결혼 후 급격히 찌그러들데요,

옷은 비싼 것을 입었는데 전혀 고급지지 않아요, ㅎㅎ'

때로는 헤어지는 게 옳다.

나는 그의 빛나던 시절을 안다,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었는지를.

이제 멋있게 늙어가야죠, 그가 말했다.

그럼 그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다, 대개의 엄마들이 아내들이 그러하듯.

같이 곱게 나이 먹기를 의기투합한다.

'그 잃어버린 무엇을 이제 찾고 싶어요. 나 자신을 되찾고 싶은 거죠.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이십대의 얼굴 말고 그 충만했던 영혼.

좀 슬프죠? 돈이 많은 곳에서 영혼이 충만하긴 어려운 건지?

아, 아닐 거예요. 내가 못나서 내 영혼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지 돈 핑계를 대면 안 되겠죠? 

이젠 저도 부자가 아니니 적어도 돈 핑계는 못 대지요, ㅎㅎ 그건 홀가분하기도 해요.

이제 멋있게 늙어가야죠!'

한국을 떠나 있는 아들이 찾아와 추석을 보낸다 한다.

'아들 떠나면 와인 한 병 들고 내려갈게요! 그럼 제게 차를 주셔요.'

어여 오시라, 아름다운 그대.


인근 도시에서 하는 저녁모임을 다녀오며 가게 하나 들어간다.

재래식 화장실, 그러니까 바깥 해우소에 놓을 화사한 꽃을 산다.

바구니도 사고 꽃대도 대여섯 개.

작은 소품 하나로도 공간이 빛나기도 하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442 2009. 1. 3.흙날. 맑음 / 129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9-01-09 1240
1441 2010 가을 몽당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10-11-06 1240
1440 2007. 5.29.불날. 맑음 옥영경 2007-06-15 1241
1439 2009. 2.16.달날. 다시 얼고 고래바람 옥영경 2009-03-07 1241
1438 146 계자 여는 날, 2011. 8. 7.해날. 비 잠시, 그리고 밤 창대비 옥영경 2011-08-25 1241
1437 147 계자 사흗날, 2011. 8.16.불날. 늦은 오후 살짝 비 지나고 옥영경 2011-09-01 1241
1436 9월 10일 흙날 흐리다 갬, 어서 오셔요! 옥영경 2005-09-19 1242
1435 2006.3.11-12.흙-해날. 맑음 옥영경 2006-03-14 1242
1434 2006.11. 6.달날. 비 옥영경 2006-11-07 1242
1433 2007. 5.12.흙날. 회색 하늘 옥영경 2007-05-21 1242
1432 145 계자 나흗날, 2011. 8. 3.물날. 맑음 옥영경 2011-08-15 1242
1431 2011. 8.24.물날. 비 옥영경 2011-09-08 1242
1430 2012. 6.24.해날. 갬 / 6월 빈들모임을 닫다 옥영경 2012-07-04 1242
1429 1월 30일 해날 맑음, 102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05-02-02 1243
1428 2007. 3. 6.불날. 맑음 / 생명평화탁발순례단, 영동 들다 옥영경 2007-03-15 1243
1427 2007. 6.16.흙날. 맑음 옥영경 2007-06-28 1243
1426 2008.11. 6.나무날. 경제처럼 무거운 하늘 옥영경 2008-11-24 1243
1425 2009. 4.27.달날. 날 차다 옥영경 2009-05-12 1243
1424 2011. 7. 3.해날. 비 옥영경 2011-07-11 1243
1423 2012. 7.15.해날. 비 긋고, 다시 비, 또 긋고 옥영경 2012-07-21 124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