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거라던 주말이었다.

무슨! 이른 아침 해를 맞았다.

다시 태어나 또 하루치를, 온 삶을 살겠다.

마당에 풀을 뽑고 창고동을 쓸고 나오자 사람들이 일어났다.


모다 아침뜨樂에 들었다. 걷기수행이겠다.

9월을 시작하는 아침햇살을 안으며 지느러미길을 걸어

들머리 계단으로 오른다.

옆으로는 미처 풀을 잡지 못했다.

그래도 채송화들이 큰 풀에 먹히지 않고 옆으로 풀을 가르며 목을 빼고 있었다.

옴자 한 곳에서 이른 코스모스가 한 송이 펴서

역시 큰 풀들 사이에서 하늘로 길게 목을 뺐다.

한 시절 살아 보겠다 한다.

달못 아래 오메가 자리에는

풀들 사이 메리골드가 아직 몇은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아고라로 들어 말씀을 주는 자리에도 받는 자리에도 앉아보고

달못 둑을 걸었다. 연이 꽃과 씨와 잎을 다 보여주고 있었다.

돌무더기 의자에 앉아 마을도 내려다보고

아가미길을 걸어 미궁으로.

고개 들어 건너편 집채 소나무를 눈에 담은 뒤

가운데 느티나무 모신 자리를 향해 뱅뱅돌이 걷기.

걸음은 밥못에 이르렀다.

연못가에 앉아 가래와 네가래와 부들과 노랑어리연꽃을 보고,

머리도 꼬리도 없는 실뱀이 노는 것도 좇았더라.

꽃그늘 길을 지나 룽따 아래로 해서 아침뜨樂을 나왔네.

두멧길을 걸어 내려오며 칡꽃 흘린 땅도 밟고

큰형님느티나무도 건너다보고

물꼬수영장을 기웃거리고

늦은 아침 밥상에 둘러앉았다 다시 책 읽고 차 마시고.

아이들은 아이스크림도 챙겨먹었다.


어제 교문 앞에서 만났던 이웃 재국이 아저씨네서

아침부터 전화가 들어왔다.

기락샘과 하다샘이 건너가서 복숭아를 또 실어왔네.

마침 나서던 산마을 책방 사람들 한 꾸러미씩 챙겨주었다.

당장 하나 씻어 벗겨먹었다.

여름, 여름, 여름이 뚝뚝 맛나게 떨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갈무리.

애들끼리도 좋지만 좋은 곳에 가족들 데리고 와서 좋다는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잘 쉬었다 했다.

덕분에 책도 몇 장 볼 수 있었노라고도.

두드러지게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들 하던데,

그러게, 그 몇 장이 어려운 우리 살이 아니던가.

많이 읽는 이들도 있더라만.


늦은 아침이었다고 낮밥을 거를까.

갈무리 글을 쓰는 사이 감자샐러드로 식빵을 만들어놓으니

모다 잔뜩 먹고 나섰다.

대처 나가 공부하고 일하고 사는 물꼬 식구들도

밑반찬이며 챙겨서들 대해리를 나섰네.


이번 산마을 책방에서는 뭘 쥐어볼까, 덩달아 물꼬 책방을 기웃거리다

<모든 책은 헌책이다>(최종규, 2004)를 잡았더랬다.

새삼 서울에서 보낸 젊은 날을 더듬었더라.

청계천 헌책방거리, 흙서점이며 삼우서점이며 현대서점, 책상은 책상이다, ...

'공씨책방'은 꽤 늦게까지 드나들었다.

'숨어있는 책'은 불과 사오 년 전에도 서울 걸음에 들렀네.

책에는 내 젊은 날 10여 년도 넘어 된 아주 가까운 인연도 담겨있었다.

내 살던 동네에는 최교수네 헌책방과 신고서점이 있었는데,

신고서점은 살던 곳을 떠나서도 다시 10년을 더했으니 그 인연이 스무 해에 이른다.

그 사이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가게는 아들로 대를 이어 같이 꾸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그 아드님이 기억나기도.

전화를 넣었다. 아주머니가 대번에 알아보셨다, 내 이름까지.

아저씨 소식을 들었고 아드님 번호도 받았다.

아드님께도 안부를 묻는 문자를 넣었더니 답이 왔더랬네.

'잊었을 리가요! 또렷이 기억합니다!'

재개발이 되면서 땅값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서점이 이전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

서울 가면 들러야겠다...

다시 이어진 소식도 이곳의 산마을 책방 일정 덕이었나니!


오후 늦게 들린 준한샘께 팥빙수를 냈다.

이 여름의 마지막 팥빙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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