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13.쇠날. 달 떴네!

조회 수 564 추천 수 0 2019.10.27 10:06:47


와! 달 좀 보시라.

저녁상을 물리고 달맞이를 했다.

학교 마당에서 동쪽 동산으로 오르는 달을 본다.

살아갈 수 있는 낱말이 늘 모자라군,

저 달을 어떤 말로 그릴 수 있으려나.

어린 날 할아버지가 달을 그을리던 한가위 저녁을 기억한다.

마을에서 달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서 짚에 불을 댕기며 할아버지는 기도하셨다.

당신이 하시는 기원에 대한 어떤 행위도 본 적 없었는데,

한가위 달맞이는 그리 하셨던 거라.

당신이 간구에서 닿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던 걸까...


영화가 풍성할 한가위겠네. 명절의 재미라면 또 그런 게 있지.

성소수자를 다룬 두 편의 영화를 본다.

꼭 동성애 영화로만 다는 아닌.

이송희일 감독의 <야간비행>은 성소수자의 특수성을

우리를 둘러싼 사회 안에서(학교폭력, 왕따문제, 입시지상주의, 재개발, 노조투쟁...)

그저 자연스런 한 부분으로 다뤄 단순한 퀴어영화를 뛰어넘는다.

동성애가 우정에 기대니 보다 보편적 언어로 보이기도 하고.

특히 폐쇄된 공간 안에서 결핍들이 모이면 누군가를 상처 내거나 생채기를 입는다.

군대가 그렇고 학교가 그럴.

우리는 때로 가해자이고 피해자이다.

그런 지대를 덜 아프게 관통해서 지날 수 있는 힘은

작은 연대일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친구까리 손잡고 어깨 겯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정에 더 방점을 찍을 수 있을 영화.

사각거리는 나뭇잎 그림자,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들리는 다리 밑, 노을진 강변,

철거를 앞둔 낡은 게이바 ‘야간비행’의 간판 불빛, 좁고 쓸쓸한 작은 골목길,

두 소년이 나란히 타고 가는 자전거, 연신 불안한 음악,

그 모든 것보다 강렬했던 장면은

학교 일진들이 모여 성소수자 주인공을 성폭행할 때(남자아이들이 남자 아이를)의 다리 밑.

그건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 그리 느꼈을지도.

성소수자에 대한, 그러니까 다름에 대해 우리들이 가진 폭력성을 고스란히 보여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그 당연함에 소름끼치는.

편견이, 나 또한 가졌을, 얼마든지 거대한 폭력에 닿을 수 있음을 새삼 일깨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Call me by your name>.

17세 소년 엘리오와 24세 청년 올리버는 1983년 여름을 함께 보낸다.

영화의 배경이 이탈리아 북부여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곳의 햇살과 풍광을 담은,

사람이 사람에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가는 청량한 사랑이야기.

책을 읽는 것 같은 영화였다.

실제로도 원작이 소설.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말한다.

아하, 그래서 영화 제목이 그랬구나.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런 거다. 사랑은 이름이 불리는 일이다.

어떤 사랑도, 동성애인들, 예외가 아닐지라.

한 때의 여름이나 그것은 또한 영원이기도 하다.

사랑은 그렇다. 또한 사실은 삶도 그렇다.

우리는 순간을 사나 또한 영원을 산다.

또 하나,

사랑이 지나간 아들에게 주는 아버지 펄먼교수의 위로는

우리 부모들이 되고 싶은 부모를 보여주었으리.

- Just remember I'm here. 아빠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하렴.

아들아, 어떤 일이 일어났어도 얘야, 여기 엄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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