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호 태풍 타파가 올라온다.

어제부터 이틀 계획했던 달골 굴착기 작업이었다.

어제는 했고, 오늘은 접었다.

마을 아래 절집 일을 하는 때에 맞춰 다시 이어가기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죽음>(열린책들, 2019)을 너무 오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난 6월 노시인이 들고 와 선물해준 책이었다.

누가 날 죽였나 찾는 과정 끝에 나는 왜 태어났을까(나는 왜 죽었지가 아니라)를 묻는 책.

베르나르의 <개미>를 흥미롭게 읽었고, 이후 여러 편을 더 읽었지만

그의 작품들은 그만큼이 다였던 느낌.

이후 책들은 그저 이전의 책들을 반복하는 듯한.

그런데도 그의 명성에 기대고 무턱대고 전작을 번역하는 분위기가 적이 불편하다.

이번 책만 해도 지나치게 찬사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 싶다, 책장은 잘 넘어간다만.

그래서 머뭇거리며 읽다 말고 다시 읽다 말고 그러다 다른 책에 밀리고,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는 시간도 피하느라 미루고,

무슨 아이들 대상 가벼운 만화 같은 같기도 해서 손에서 자꾸 떨어지고,

그렇게 흐른 시간이었다.

<티벳 사자의 서>며 <이집트 사자의 서> 혹은 장자를 접한 이들이라면

그 책들을 겉핥았다는 생각을 <죽음>을 읽으며 지울 수 없을 것.

그나마 이 책의 빈약함을

장과 장 사이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메워주었다고나 할까.


죽음에서 주인공 가브리엘이 배운 여섯 가지가 작가가 삶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일 것.(2권 p.311)

하지만 반향이 그리 크지는 않네.

1. 인간의 삶은 짧기 때문에 매 순간을 자신에게 이롭게 쓸 필요가 있다.

2.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남들이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결국 선택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우리가 지는 것이다.

3. 실패해도 괜찮다. 실패는 도리어 우리를 완성시킨다.

  실패할 때마다 뭔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4,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대신 사랑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5. 만물은 변화하고 움직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억지로 잡아두거나 움직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6. 지금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하다.

  비교하지 말고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애써야 한다.


밑줄 몇.

1권에서.

- 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조금 더 살 수 있다면...(p.58)

그러게. 딱 그 말이지. 그때도 우리가 그걸 알았더라면!

하지만 사람은 쉬 잊는 존재라. 우리는 어느새 잊고 또 여전히 영원히 살 듯 굴 테지.

죽음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할 것.

결국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 보자.

- 나는 살아있고 당신들은 죽었다(주인공 가브리엘의 묘비명)(p.227)

살아있되 생기가 없다면 우리들이 죽은 자일 것이고

죽었으나 제 생을 한껏 살다 떠났다면 그가 산자일 것.


2권에서.

-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육신을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존재의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만큼

   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제 재능이 생명 전반에 유익하게 쓰이도록,

   특히 살아 있는 제 인간 동족들의 의식 고양에 기여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p.9)

- 하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많다고 해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p.36)

- 영혼이 머무르고 싶게 만들려면 육체를 잘 보살펴야 한다.(p.302)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 끝없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법칙이다’(p.75)라는 말처럼

우리는 태어나고 죽는다. 또 태어날 지도. 그때도 죽을 것이다. 또 태어나도.

분명한 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

이왕이면 잘 살아야겠지!

어떻게 잘?

신나게 뜨겁게 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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