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고 예보된 주말이었다.

안개를 밀어내기는 힘들어한 아침이지만 해가 나왔고,

먹구름 몰려왔지만 정오에 굵은 빗방울 서넛, 저녁밥 때 역시 두어 방울,

그리고 한밤 한 방울이 전부였다.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곳 살림을 잘 아는 윤실샘은 마늘을 찧어 얼려오기까지 하였네.

네 살 윤진이는 8월 여름계자에 여러 날 묵어갔다고

바로 마당에 뛰어들어 자갈돌과 민들레씨를 선물로 들고와

옥샘 하고 내민다.

22개월 승준이는 고속도로에서 내내 칭얼거렸다는데

너르고 편한 공간을 저도 아는 게지, 기우뚱거리며 마당을 걸었다.


물꼬 한바퀴부터.

공간을 안내하다보면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안내자는 다시 한 번 제 정체성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과 영유아 다섯과 초등 하나, 그렇게 열둘이 함께하는 빈들모임이다.


“이번 시간은 투 트랙으로 가지요.”

엄마들은 부엌에서 복숭아잼을 만들었다.

여름의 마지막 복숭아가 곳간 냉장고에 가득했더랬다.

아가들은 엄마들 곁을 오가거나 모둠방에서 뒹굴거나 마당을 뛰어다니거나.

초등 현준이와 마을 길을 걸었다.

미간에 있는 너의 짜증의 정체가 무엇이냐 물었다.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친구들로 이야기가 엮였다.

어른들도 어른들이지만 아이들도 저들 사느라 욕본다.

그들도 삶의 몫이 있겠지만

보다 가벼워야 하고 보다 즐거워야 한다.

아이 적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생이 얼마나 남루할 것이냐.

도움이 필요하냐 물었고, 도와주기로 했다.

“잘해보자, 우리!”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리라 한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전하는 것도 물꼬의 몫이라.


복사잼은 설탕도 투입되지 못한 채 불에서 내려져야 했다.

왜? 밥해야 하니까.

네 개의 불은 저녁을 차리는 데 써야 했다.

내일 사람들이 떠나기 전에 다시 올려서 집집이 싸주어야지 한다.

복숭아가 물컹하게 삶아만 져 있어도 많지 않은 시간으로 가능할 거라.


아이들이 어리니 밤마실은 접기로 했다.

재활치료를 받는 아이도 있었고.

저녁밥상을 물리고 고래방으로 갔다.

계자 이후 없던 대동놀이였다.

달리기부터 하지, 그것만 해도 되리.

전래놀이도 하고.

무궁화꽃도 살구꽃도 피우고 개구리도 잡고 여우도 놀리고...

세희가 어찌나 야물게 술래역을 하던지!


장작놀이도 잊지 않고 했다.

불싸라기가 하늘을 채우더니 별이 되었다.

그리고 오른 달골, 자정이 넘어가는데 실타래가 길게 길게 이어졌다,

저마다 곡진한 사연들이 어찌 없을 텐가.

도대체 잘 거 같지 않은 아이들도 하나둘 쓰러졌더라.

계모임이 따로 없었네.

자매가 있었고, 예정보다 일찍 태어난 아이들을 같이 둔 산부인과 동기들이 있었고,

그들의 지인이 있었고.

밤이 깊을수록 너나없이 데워지는 마음이라...


참, 현준이는 벌써 새끼일꾼처럼 형아 노릇을 넘어 진행 도움꾼이기도.

물꼬는 그렇게 아이에서 형님으로, 그리고 샘으로 역사를 이어가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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