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 2.물날. 비

조회 수 223 추천 수 0 2019.11.23 22:38:52


비 내린다.

오후에는 많아졌다.

깊은 밤에도 내린다.


산 너머 지역의 도서관들에 들릴 일이 있었다.

한 곳은 시설로나 서가의 크기로나 입이 벌어질 만했지만 한산했고,

작은 한 곳은 중학생들이 많아 놀랬다.

아이들은 차가 없다.

아이들이 걸어서 닿을 곳에 도서관이 많아야겠더라.

지방에 새로 지은 도서관들에서 강연했던 적이 있다.

멋진 곳들이었지만 아이들이 학교 갔다 오다 들러 놀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부모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가는 아이들이라면 모를까.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가나 그곳의 책방이나 도서관을 웬만하면 찾아본다.

미국 시카고에서 한참 살았을 적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몇 블럭마다 있는 도서관들이었다.

전 도시가 한 가지 주제로 일 년 내내 행사를 하고,

사서가 외부강사자에 의존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더라.

그 나라의 거대한 힘을 그곳에서 느끼게도 되던.

집에서 머잖은 서점 한 곳에서는

직원 하나가 상시로 아이들 프로그램을 이끌었더랬다.

바르셀로나에서는 골목 귀퉁이 시 전문 서점 하나에서도

때때마다 낭독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걸 보았고,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앞으로는 책을 전시하고 안쪽으로 테이블 하나를 놓고 찻집도 열고 있더라.

(한국에서) 책을 읽지 않고 서점이 죽어간다 하나

한편 특색 있는 작은 책방들이 살아나고도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반갑고 고맙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 언제 찾아올까,

소설 한 구절이었다.

그런 대목이었을 게다.

집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깊숙한 곳까지 가서 수도검침을 해야 하는 이가

외부인들을 경계하면서 짖어대는 떠돌이 개들에게 등산스틱을 휘두른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어느새 스틱 대신 남은 고기나 빵 따위들을 들고 가고,

개들이 그 먹이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

너도 나도 순해지는 한 순간!

아무도 잡아먹지 않는 세상에 대한 소망,

어린 날 우리 모두의 꿈이었을 테다.

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뭔가라도 먹을 수밖에 없었던 토끼는

결국 댕댕이 덩굴 앞에서도 차마 입을 대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왜 우리는 다른 생명을 그리 먹어야만 사느냐고 하느님께 묻던

권정생 선생의 동화 한 구절에서였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보리수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만 마시고도 살 수 있다던가.

정녕 세상은 어느 맥락에서 그렇게 순해질까,

순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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