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 5.흙날. 흐림

조회 수 416 추천 수 0 2019.11.24 23:58:22


날마다 먹는 밥도 때로 별스럽게 감동이 일 때가 있다.

오늘 저녁 밥상엔 볶음우동을 냈다.

마침 언 칵테일새우가 있었다.

푸성귀들을 넣어 볶고 우동사리를 살짝 데쳐 마저 볶았다.

일본에서 먹었던 우동볶음 같았다.

그것은 그 자리에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오르게 했다.

30년 전, 강제징용된 한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여정이었더랬다...


무를 솎아주었다. 그러니까, 무가 아니라 무잎채소라 해야.

양이 많았다. 열무김치처럼 담가 먹을까?

그러기엔 맛이 모자람이 있겠다.

데쳐서 나물로 먹기로 했다.

시금치가 많이 나올 때 그러하듯 모두 데쳐 찬물에 헹궈 짜서 얼리고,

당장 먹을 만치만 덜어 된장에 주물럭거렸다.


이웃 절집에 품앗이노작을 다녀왔다.

명상정원 아침뜨樂의 아고라 잔디도 그곳 손을 빌렸더랬다.

그거 아니어도 자주 오가는 이웃네라 급하게 얻는 손발 적잖다.

그곳에 요새 절 단장 불사가 한창이라

공간 한 곳 감나무 아래에 벽돌로 무늬를 놓아주고 있다.

물꼬 아침뜨樂의 미궁이 일종의 동기가 되었다 할까.

며칠 전 그 둘레에 쌓다만 돌담도 마저 쌓고 바닥을 긁어 놓았다.

오늘은 두 가지 색깔의 벽돌을 놓아 달팽이 모양으로 들어가도록 바닥을 채웠다.

다음 주에 하루 두어 시간 짬을 내면 가쪽 정리까지 끝낼 수 있겠다.


다녀오니 아람샘이 보내온 택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식으로 먹기 좋을 쿠키였다, 청첩장이 함께 든.

우리 아람샘...

2010년 전후 서너 해는 새끼일꾼들(주로 고교생)이 주축으로 꾸렸던 계자였다.

공동체를 꿈꾸며 함께했던 이들이 각자의 공간을 찾아 떠나고

물꼬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그때,

바깥의 젊은 친구들이 나섰더랬다.

“옥샘이 계속 계셔만 주시면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물꼬에서 어린 날을 보내고 자란 이들이 있었고,

교사가 되려는 사범대생들이 있었으며,

물꼬와 인연이 닿았던 보육원 아이들이 자라 손발을 보태러 달려왔고,

물꼬를 소중하게 여겨준 학부모들이 있었다.

그 시절 물꼬를 그들이 지켜냈고,

그 가운데 ‘영광의 새끼일꾼’이라 일컬어지는 아람샘을 비롯한 새끼일꾼들이 있었던 것.

품앗이일꾼 희중샘 서현샘 아리샘 진혁샘 재훈샘 세아샘 유정샘 인영샘 ...

밥바라지 선정샘 인교샘 지희샘 정석샘 충근샘 정애샘 무범샘 ...

새끼일꾼 진주샘 소연샘 지윤샘 윤지샘 연규샘 경철샘 인영샘...

빛나는 이름자들 그네를 기대고 살아냈던 시간이었다마다.

새삼 고맙고 그립다, 물꼬의 다음 날을 길어주던 이들!

아람샘...

스무 살에 생활전선으로 가서 10년을 보내며 좋은 도반을 만나

마침내 혼인을 한다.

희중샘이며 진주샘이며들이 걸음 한다지.

간다, 가야구 말구!

“사랑한다, 아람아! 축하해, 아람!”


한 대안학교의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다.

지난 20여 년 엄청난 수의 대안학교들이 문을 열었고,

멧골을 나가본 지 오래, 소식을 모른다.

겨우 초창기 예닐곱 곳 정도를 알았던 그때로부터

얼마나, 어찌들 흘러왔을까...

교류라고 통 없는.

그런데 그 한 곳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학생수를 유치하기 위한.

물꼬가 아이들 학교 배치 상담을 많이 한다 하니

그 학교 설명회로 아이들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아이들이 줄고, 대안학교로 오는 아이들은 더 줄었다더니,

그래서 문을 닫기도 한다더니, 실감이 났다.

물꼬는 이미 그 길을 떠난 지 오래.

우린 더 이상 입학과 졸업이 있는 상설학교도 아니거니와

아이들의 학교보다 어른의 학교로서의 기능이 더 커져 있는.

좋은 학교들이 오래 남아 아이들을 만난다면 좋을.

그들의 홍보 과정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받아 물꼬의 인연들에도 전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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