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4.달날. 흐림

조회 수 544 추천 수 0 2019.11.27 10:49:08


정오로 가며 서서히 흐려갔다.

비닐목공실 전기 정리 중.

아침 9시부터 이웃마을 전기기사가 건너와서 점심까지 작업하다.


제습이(달골에 들어와 닷새를 산 진돗개 강아지) 밥을 주고

묶인 쇠줄을 노끈으로 바꾸어 산책을 시키다.

대문을 넘지는 않으려 하더라, 아침뜨락 계단도 오르지 않으려 하더라.

한 존재가 새 공간에 적응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아이들을 생각한다...


달골 아침뜨樂 지느러미 아래 장승 둘,

그 앞 낮은 언덕에 어제 해거름에 심은 느티나무,

오늘은 물을 준다.

물도리에 물을 채우고 물이 잘 스미도록 삽질을 한다.

온몸을 다 써야 한다. 삽을 쥔 채 그만 아래로 푹 들어갈 것만도 같았다.


밭에 들어가지 못한 얼마쯤의 시간,

가지가 저리 커버렸다.

굵기도 굵은 것들이 따다 쌓으니 한아름이다.

무치고 볶고 굽고 튀겨도 못다 먹을.

가을인 게다.

꼭지를 남기고 길게 칼집을 넣어 잘랐다.

척척 빨랫줄에 걸쳐 여러 날 말려

가위로 먹기 좋게 자르거나 보관했다 잘라

물에 불려 볶으면 겨울에 얼마나 좋은 반찬이 또 될 것이냐.


다식을 만들어둔다.

자색고구마, 단호박, 녹차 가루가 있더라.

땅콩을 껍질째 끓여 색을 입히기도 하고,

벗겨서도 입히기도 하고.

잠시 틈을 내 만들어두면 또 한참을 꼭 다식 아니어도 좋은 주전부리거리가 된다.


달골 인문학모임에서 비폭력대화 연습이 있었다.

관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관찰하고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보고

내 욕구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리고 상대에게 부탁하기.

가만 보면 우린 상대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내 뜻대로 할까에만 집중하고는 한다.

나는 변치 않고 그만 어찌 해보겠다는.

그러려고 대화기술도 배우는.

너도 좋고 나도 좋기 위한 소통기술임을 새삼 확인하다.


한 댁에서 배가 몇 개 왔다.

달랑 세 식구 살림에 배가 넘쳐 가져왔다 했다.

“우린 모든 것을 상자로 사요.”

아, 그렇구나.

밥 먹고 산다고 그 살림이 그 살림이 아닌 거다.

몰랐다, 집에서도 배를 상자로도 사서 먹는 걸.

이 큰 살림에서도 배를 먹기 위해서 상자로 사 본 적이 없다.

평소에 상주하는 이가 몇 없어 그렇거니 하겠지만

행사를 치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배가 든 상자가 이곳에 없었던 건 아니다.

당연히 선물이거나 들어오는 이들이 사서 들어오거나.

문득 삶의 꼴이 얼마나 다양할까 싶더라.

하물며 개인의 취향에서야 말해 무엇 할까.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그냥 ‘다른’.

살림을 사는 일도 저마다 규모 혹은 형태들이 있을 거라는 거다.

예전에 가난해서도 그랬겠지만 쌀을 되로 사 들고도 왔다지,

연탄을 몇 개씩 새끼줄에 꿰어 사오기도 했단다.

물자가 얼마나 풍족한 시대를 우리 살아가고 있는지.

사는 걸 찬찬히 돌아보며 혹 그래서 쉬 버리는 건 없는지 살핀다.


조국 법무부장관은 결국 사퇴를 했다...

김천구미의 사회적 신분과 교양을 갖춘 부인네들이 모여 앉아 이 사태를 말하고 있었다.

“그러게, 진작에 내려오지...”

“장관 그거 하겠다고...”

나는... 그들이 집단이어서이든, 그들의 정치적성향의 벽이 너무 높아서이든

난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일어설 때까지 결국 아무말도 못했다.

검찰은 잔인했고(“감히 누가 검찰 우리를 건드려!”, 장관 후보 딸의 일기장까지 탈탈 털었다)

언론은 비열했으며(검찰에 덩달아 춤을)

대중은 본질을 따져보기 전 무책임한 언론이 주는 정보에 너나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화났고 슬펐고 답답했고 무기력했다.

그래도 벌어지는 일들에 고개 돌리지 않아야 하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596 계자 세쨋날 1월 7일 옥영경 2004-01-08 2018
6595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2010
6594 운동장이 평평해졌어요 옥영경 2004-01-09 2099
6593 계자 다섯쨋날 1월 9일 옥영경 2004-01-10 2151
6592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129
6591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469
6590 계자 일곱쨋날 1월 11일 옥영경 2004-01-12 2050
6589 계자 여덟쨋날 1월 12일 달날 옥영경 2004-01-13 1772
6588 계자 아홉쨋날 1월 13일 불날 옥영경 2004-01-15 1727
6587 계자 열쨋날 1월 14일 물날 옥영경 2004-01-16 2195
6586 계자 열 하루째 1월 15일 나무날 옥영경 2004-01-16 2068
6585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247
6584 계자 열 사흘째 1월 17일 흙날 옥영경 2004-01-28 1726
6583 계자 열 나흘째 1월 18일 해날 눈싸라기 옥영경 2004-01-28 1846
6582 38 계자 갈무리날 옥영경 2004-01-28 1617
6581 새해, 앉은 자리가 아랫목 같으소서 옥영경 2004-01-28 1730
6580 푸른누리 다녀오다 옥영경 2004-01-29 2503
6579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310
6578 39 계자 첫날 1월 26일 달날 옥영경 2004-01-29 1749
6577 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옥영경 2004-01-30 198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