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를 뽑았다. 어느 해보다 작았고 적었다.

늦게 심었고, 거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어린 것들은 알타리무김치를 담아도 되겠다 싶더니

마침 무김치가 있어 국국물 끓일 때 투척키로.

 

각자 자신의 일을 보고 같이 작업을 하자고 모이는 시간이 낮 두어 시,

3시면 기온 떨어지기 시작하는 산중이라 따듯하게 마실 것과 참을 내고 나면

어느새 해가 기울고,

6시 어둑해질 때까지 작업은 고작 두어 시간.

대처 식구들도 들어오고 하얀샘도 오고

아침뜨에 들어 수로에서 아고라까지,

아고라에서 아가미길을 향해 낡은 벽돌을 깔아나갔다.

수로에서 아고라 길은 일전에 팼는데,

습이 많은 곳이라 파서 말려두었던.

흙덩이를 깨고 풀을 털어내고 돌을 줍고 쇠갈퀴로 긁고 갈퀴등으로 흙을 고르면

그제야 땅 다지는 기계를 쓰는 차례였다.

그러면 벽돌을 깔 수 있는.

착착 깔고 다시 그 위로 흙을 덮어 벽돌 사이를 메우고,

특히 둥글게 돌아가는 부분은 한 쪽이 간격이 벌어질 밖에,

그러니 흙을 더 많이 밀어 넣고.

 

오늘은 겨울이면 입는 작업복을 들고 재봉틀 앞에 앉았다.

이게 처음엔 등산복이었다가,

이 옷으로 안나푸르나도 가고 어디고 갔더랬네,

겨울 추위가 보통이 아닌 이곳에서 겨울에 입성으로도 맞춤하여 꺼내 입고

특히 바깥 작업할 때 보온 효과가 큰 거라, 그러니 곧잘 입는데,

그러다 페인트가 하나 묻고 폼이 묻고 기름이 묻고...

아주 작업복이 되었다.

산이야 자주 오를 일이 없지만 작업이야 거의 날마다 하니

쓰임으로 보자면 그게 더 요긴한.

그 먼지를 다 어쩌실라고...”

이 옷이 바짓단을 두어 번 접어야 거치작거리지 않는데,

일을 하다 보면 흙이며 가득 들어가곤 하여

단을 내려 꼭 털어야 했다,

그거 아니어도 털어야 할 작업복이기도 했거니와.

오늘 같이 일하던 이가 그 바짓단을 보고 왜 자르지 않냐 물었던 거라.

 

그간 왜 잘라내지 않았지 했더니,

습관적으로 입고 있었고,

일생의 적 게으름도 한몫 했겠고,

그 무엇보다는 역시 더 따뜻하다는 게 이유였을 거란 생각.

추위라면 글자부터 벌써 춥고 가을이 오면 겨울 걱정부터 앞서는 사람이라

이 골짝 매섭기는 또 얼마나 매서운가,

주로 장화를 신고 다니니 겨울 깊을 땐 바지를 안쪽으로 쑤욱 집어넣기도 좋았더란 말이지,

그러는 사이 해가 가고 또 갔던.

그런데, 장화 속에 넣는 날보다 밖으로 접는 날이 더 많더란 말이지.

 

저녁상을 물리면 방으로 들기 바빴는데,

그래, 오늘은 자르고 말지,

바짓단에 가위질을 하고 끝단을 정리하여 박았다.

잠깐이라 해놓고 막상 하면 시간이 좀 흐르지만

그게 또 그리 긴 시간은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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