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5.물날. 맑음

조회 수 415 추천 수 0 2020.01.17 10:24:14


 

수행으로 여는 아침!

생이 그럭저럭 괜찮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대처 나가있는 식구들이 휴일이라고 모여

아침뜨락을 걸었고, 강아지 습이들과 동행했다.

아직 이해하건 못하건 나는 습이네들에게 내 말만 하고 있었다,

뭐 꼭 말 못하는 아가에게 하듯.

손을 내밀며 !’하면 앞 두 발을 내게 올린다.

그게 그 말인 줄 안다기보다 분위기상 그래야 될 것 같다 여기는 눈치.

앉아!’하며 억지로 주저앉힌다.

예쁜짓!’, 이 역시 힘을 써서 주저앉히다시피 뒤집어 간지럼을 태운다.

가자!’, ‘아침뜨락으로!’, ‘집으로’ 를 습이네들이 이해한다고 생각하고픈 .

이런 것으로도 이 멧골은 재미지다.

 

물꼬의 살림살이들은 퍽 낡았다.

이불은, 계자를 위한 이불 일부는 1997년 산 것이다.

무려 20년이 넘어 된. 그때 좀 좋은 걸 사기는 했다.

어떤 건 아궁이에 불 때는 사택 구들장에서 탄 부분도 있고,

또 어떤 건 포도즙을 먹다 쏟아 물이 든 것하며

너무 오래 되어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도 적지 않다.

그래도 여전히 멀쩡해서 버리지 못하는.

오래 되면 낡아서 공기층이 얇아지기도 하련만 아직은 괜찮은.

입성도 그렇다.

옷들이 20년 된 건 예사이다. 하기야 어떤 가정인들 그렇지 않을까.

낡아도 저가 특별히 잘 입는 옷들이 있지 않나.

장에서 산 싼 값의 치마, 그것도 집안 어르신이 너 좋아하겠다며 사다 준,

15년을 입는 동안, 그것도 가을부터 봄까지 입는 치마 둘 중의 하나인 보라색 주름치마는

허리 고무줄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서 자꾸 질질 내려왔더랬다.

어제는 재봉틀을 꺼내 고무줄을 갈 참인데,

고무줄 상자로 가니 넓은 고무줄이 딱딱해져있는.

시간이 또 그리 흘렀다.

인근 도시에 다녀오며 그냥 수선집을 들렀더니

! 만 원이라고 했다.

만 원에 산 옷을 삼 만원에 수선해서 입기도 한다더니 정말...

하기야 해 보면 또 그 노고를 안다.

허리 전체로 바늘땀을 다 따내고 다시 박아야 하는.

싸게 해줄게요. 그냥 하셔!”

 

여러 날 틈틈이 만들었던 사이집 타일 식탁을 오늘은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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