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4.흙날. 맑음 / 그대에게

조회 수 162 추천 수 0 2020.01.20 13:20:36


 

학교 들어서는데 교문에 뭐가 눈에 걸린다.

우리 우편함 앞으로 덧대어 우편함이 걸렸다.

군에서 한 걸까, 집집이 일괄적으로 했다는데,

어째 벽도 있는데 하필 거기다...

도대체 감각 없이!

그렇다고 사실 내가 별 감각이 있는 것도 아닌.

다만 뭔가 불안해 보이는 거면 옮겨주어야 할.

당장 풀고 기둥에 붙은 나무 쪽에 달다.

그런데 스테인레스로 된 함에 구멍을 하나 뚫어야 했는데,

거참 쉽잖은.

그래서 몇 차례 본관으로 또 숨꼬방으로 오간.

여기 사는 일, 여기 일이 그렇다.

그렇게 운동장 몇 번 오가면 하루해가 진다는.

 

간장집에서 몇 해 먼지 안고 있던 베개와 이불 두어 개 꺼내

이불을 빠는 저녁이었네.

쓰지 않은 지 벌써 몇 해인데, 거기까지 들여다 볼 눈이 없었던 올해였네.

재작년에 한 해를 비운 물꼬로 돌아와 아직 손이 가지 못한 공간들이 그리 있었네.

난로 위 주전자 끓는 물을 들고 와 손으로 주물럭거린 뒤

세탁기에 넣었네.

빨래가 도는 동안 그 둘레를 쓸고 닦고.

통로 신발들도 털거나 빨거나.

 

늦은 오후 기름보일러가 오다.

이웃 도시의 금해샘네서 온.

이사를 하며 없앤다는 보일러였다.

채워져 있던 기름까지 담겨.

고추장집 연탄보일러가 탈나서 바꿔주어야 했던 참에.

자주 쓰는 게 아니니 기름보일러가 더 효율적일 수도.

방 한 칸은 천장이 내려앉았는데(고쳐야겠지! 전체적이 아니라면 임시로라도),

당장 다른 한 칸은 쓸 수 있는. 계자 준비위가 가동될 때 써야 하는.

그래서 보일러를 바꾸려는데 마침 그 댁에 쓸 만한 게 있다는 소식.

시유지로 곧 편입될 땅이어 봄 오면 집을 비우게 되는.

하여 아래채에 있던 보일러를 떼도 된 거다.

반지하로 들어가 그걸 빼내느라 일하는 이가 여러 시간 퍽 애를 썼네,

여기까지 실어와 다는 일까지.

저녁 밥상에 같이들 앉았고, 차를 나누고 갔다.

이거 철관음 아니에요?”

중국인인 그가 말했네.

정말 청차 철관음이었더라니.

산둥에서 온 그네에게 흔한 차였던가 보다.

 

발해 1300호 추모제(124일 전후 주말) 주기가 다가오는데 소식이 없었다.

(19971231일 발해 시대 뗏목을 재현해 발해항로를 따라 가던 이들이 있었고,

19981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다들 얼어붙은 날씨마냥 마음이 그러하거나 사정이 그러하거나.

두엇 선배와 소식 나누네.

추모제를 못할 양이면 물꼬에서라도 젯밥 올린다 하였다.

그런데 날이 참 공교롭게도

19일이면 17일까지 계자 끝내고 아직 남은 이를 멕이거나 녹초가 될.

그 다음 주로 보자면 또 설이네.

그렇다고 21일까지 갈 건 아닌 것 같고.

바삐 낼모레 선배 몇 모인다 하니 기별 있겠지.

 

그리고 그대에게.

오늘은 그대를 생각하였네.

아이들과 겨울방학 중이리라.

어머니가 월급을 강제징수하신다던가.

거기서 얼마의 용돈을 받아 쓰느라 늘 빠듯한 주머니라 들었더랬네.

그런데도 모임 때마다 꼭 참가비에 얼마쯤의 값을 더 얹혀오네.

이번 겨울도 어김없이.

어디서 그대는 그런 마음씀을 배웠을까.

나는 그 나이에 돈이 없어서도 마음을 쓰지 못해서도 그릇이 작아서도 그러질 못했네.

게다 아이들로 힘을 얻었을 것이나 또한 힘이 들기도 했을 것을

어찌하여 그대는 이 표독스런 겨울 대해리로 또 오신단 말인가.

오늘은 그대가 나를 살리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게으름이 일다가 벌떡 일어섰네,

시린 발을 안고 자꾸 난롯가로 가던 몸을 밀어서.

수행도 그렇게 하고, 밥상도 그렇게 차리고, 빨래도 걸레질도 그렇게 하였더라니.

고맙다, 나를 살게 하는, 일으키는 그대여, 그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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