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 거친 비바람에 된장집 지붕이 덜러덩 통째 날아가다.
지붕 새는 옥상 위로 덧댄 지붕.
그것조차 새는 곳이 있어 3년 전엔 민수샘이 다시 손본.
학교 운동장에서 보자면 남쪽 언덕을 덮치다.
흉물이라. 계자 전 우선 치우는 게 먼저이겠다, 수리야 이 겨울은 그냥 지난다 하여도.
낼 모레 샘들 손 여럿일 때 끌어올려 해체키로.
준한샘이 이제 일곱 살이 되는 막내 딸아이랑 들리다.
아직 책상에서 덜 끝낸 일이 있어 집으로 들어오라 하였고,
마침 계자 식단을 짜서 붙이기 위한 종이며 색연필이며가 있어
딸아이 그림을 그리며 놀다.
같이 내려가 국수를 삶아주었다.
준한샘도 온 걸음에 복도 난로에 이어지는 선이 너덜거리는 걸
벽 쪽으로 바짝 조여 주었네.
읍내에서 시작하는 시민연극교실 있어 잠시 들리다.
조연출 제의가 있었는데, 계속 같이 작업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내가 배운 것이 아이들에게 갈 수 있었으면 해서
그래서 좀 더 연극을 익혔으면 싶은데
내가 뭘 해야 하는 거라면 부담이어서.
물꼬 일도 내 키를 넘는 지라.
나간 걸음에 물꼬의 오랜 논두령 격인,
과수철이면 때때마다 꼭 과일을 들여 주는 이 만나 밥도 먹고,
읍내 서점 하나가 문을 닫으면서
나가면 쉴 곳이 되었던 곳이 사라진 대신
두엇 선배랑 통화해 차도 마시다.
세상에! 그 편에 김석환 교수님 별세 소식을 이제야 듣다.
물꼬의 행사에 동료 교수님들 모시고 와서 공연도 해주셨던.
정확하게는 재작년 3월에 돌아가셨는데, 이제야 들은.
그 해 한국에 없었으니까. 사실 지척인 관계도 아니었고.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하기야 옥선생이 페이스북 안 하니까... 요새는 다 sns로 소식 보내니까.”
그렇다, 내 삶이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것도
타인의 삶을 실시간을 아는 것도 불편한.
아직은 이 멧골에서 ‘실체’로 사는 일만 할 것이다.
꼭 알아야 할 소식이면 내게 닿겠지.
안 닿는다면 또 그만일.(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노래를 하나 부르는 걸로 그 분을 보내드렸네.
한 선배는 대학 동기를 오늘 잃으셨다지.
“우리가 그럴 나이야.”
그렇구나...
그래서 또 열심히 살 세상이겠다.
지역 사람들과 여럿 인연이 있다.
그런데, 사실 서로 잘 모른다.
서로 얼굴을 알 뿐 이해한 적 없는, 별 알려고 한 적도
말을 제대로 주고받은 적 없는.
하여 “네가 날 알아?”, 그리 말할 것만도 아닌,
내가 아는 건 혹은 그가 아는 나는 각자가 생각하는 타인이지 그가 아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할 일 아니겠다, 그도 나도, 누구든.
하기야 누가 누구를 말한단 말인가.
나이 들수록 사람 모르겠고, 그러나 별 거 없는 사람일 지라.
그저 성실하게 살고 진실하게 대할지라.
청소년 계자 못 했으니(청계가 새끼일꾼 훈련의 시간이기도 함)
하루 일찍 들어와 분위기를 익혀도 되겠냐는
새끼일꾼 건호 형님의 문자 닿다.
고맙고 기특한.
계자의 선생들이 그런 마음들이라.
“오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