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아무도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 전

난리를 피해서, 나쁜 관리들의 횡포를 피해서

이런 저런 까닭으로 이 산 어디께로 스며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무를 태워 터를 만들고 농사를 짓고,

평화를 찾아든 사람들이 자꾸만 늘어가

어느새 그곳은 아주 커다란 성을 둔 작은 왕국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모이니 다툼이 생기고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고

그래서 대표들을 뽑았지요.

그런데 이 대표들이 갈등하기 시작했는데

온 왕국 어른들이 아주 뚝 갈라져서 싸우게 되었더랍니다.

어떤 사람이든 이 왕국에 있는 이라면 살기 위한 기본 쌀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그러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니 그래선 안 된다는 의견이 갈린.

그렇게 시작한 싸움이 사사건건 싸우는 일상이 되고,

처음에 서로 무엇 때문에 다투기 시작했는지도 잊고,

그냥 나랑 다른 편에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보다 못한 아이들이 기도를 했지요. 어른들을 말릴 수가 없으니 혼을 좀 내달라고.

지나던 신이 그 소리를 듣고 비를 내렸는데,

억수같은 비가 하루 이틀 사흘... 이레 밤낮 비가 내린 뒤

온 세상이 잠겨버렸습니다. 신은 다른 곳의 부름을 받고 떠나버리고.

다시 이레 밤낮이 흐르자 서서히 땅이 드러났는데,

마지막으로 예닐곱 커다란 소나무가 솟은 민둥산이 나타났고

거기 기도하는 자세로 작은 여자 아이가 앉아있었습니다.

다시 새 세상이 시작되었지요. 세상의 처음이 된 마고였던 겝니다.

그곳을 나중 사람들이 마고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나요.

 

산에 갑니다.

으레 봄이고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고 떠나는 산오름인데

비가오고 눈이 오고 바람 불어도 가는 산인데

그래서 이 겨울계자도 가는가 보다 했지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더랬습니다.

올해 영동군이 수렵허가구역이 되면서 800여명에 이르는 포수들이

(우리 작은 도윤이는 사냥꾼이라는 좋은 말을 찾아주었군요)

인근 산을 돌아다닌단 말이지요.

담당 공무원과 의논을 해보았지만

협조공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관광지나 인가는 피한다고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마을과 떨어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며 산을 탈 것인데

자칫 대열을 크게 벗어나는 일이 생긴다면!

멧돼지의 출몰이 잦아진 상황도 고려해야했지요.

모험과 안전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샘들은 최대의 긴장으로 아이들을 지켜낸다,

우리는 떠나기로 했습니다.

안에서도 할 것들도 많고 재미난 것도 많은데

우리는 왜 긴 시간을 들여 굳이 산으로 들어가는 걸까요?

삼도봉 자락인 이곳, 골이 깊은 만큼 스며든 이야기도 많지요.

오늘은 마고산의 전설을 따라 모험을 떠납니다.

 

05:30 김밥을 쌀 밥에 불을 댕기고,

아침 6:30 샘들을 깨워 김밥을 쌉니다.

‘630분 일어나서 김밥을 쌌다. 이런 일을 하는지 이번에 처음 알았고, 겪었다. 힘들었다.

밀려오듯 오는 잠을 버텨내며 김밥을 쌌다.’(새끼일꾼 현진 형님의 날적이 가운데서)

세 시간도 못 잔 채로 김밥을 싸려고 일어나니 정말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안났다.

다들 아무 말도 안하고 싸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웃기다. 피곤에 찌든 샘들의 모습... ㅎㅎ

김밥 싸면서 옛날에 정상에 올라서 먹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빨리 먹고 싶은 기대감에 부풀었다!’(수연샘)

대표기도(라고 우리는 농을 합니다)를 교무실에서 하기로 하였으나

오십 배는 밥을 싸는 샘들 사이에서 백배 대배를 끊어서 하며 해건지기를 마칩니다.

순조로운 165 계자도 계자고 오늘의 산오름도 산오름이지만

2차시험과 면접을 앞두고 있는 임용고사를 친 샘들을 위한 기도도 담은.

샘들이 아이들을 깨워 산오름 복장을 살피는 동안

떡만두국을 끓여 종을 치지요.

김밥을 싸다가 아이들 방으로 산으로 갈 채비를 도우러 갔다.

한 명 한 명 졸려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옷을 챙겨준다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현택샘)

한미샘은 엄마가 김밥 싸던 기분을 알겠더라던가요.

 

올해는 샘들이 형광조끼를 입기로 했습니다.

첫째로야 혹 있을지도 모를 사냥꾼들에게 눈에 잘 띄기 위해서

아이들이 샘들을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큰 형아들 몇도 입었지요.

샘들은 형광색 조끼를 입고 갔는데 뭔가 있어 보이고 전문적인 느낌이었다,

운동선수들처럼!’(휘향샘)

 

달골을 다시 걸어올라 아침뜨락 한 바퀴 돌며 몸을 풀고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듭니다.

어제도 갔었지만 또 한 번 참 좋고 산에 오르기 위한 힘을 얻고 가는 거 같았다.’(휘향샘)

수현이가 배 아프대요.”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문제가 아니라면 샘 하나를 붙여 학교로 돌아가야겠지요.

수현에게 결정케 했습니다.

산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들에 대해 들려주자

갈래요, 하며 성큼성큼 발을 내딛기 시작하던걸요.

저러면 괜찮은 겁니다, 할 만한 겁니다.

간밤에 사냥꾼 때문에 산에 가기 무섭다고, 집에 가고 싶다던 작은 도윤이,

언제 그랬던 걸까요, 아주 신명나서 걸었습니다.

맨 앞은 제가 갑니다. 맨 뒤는 희중샘.

저보다 먼저 가면 김밥이 사라지는 마술을 볼 수 있고,

희중샘보다 늦게 오면 파이가 사라지는 마술을 볼 수 있습니다.

마술을 보고 싶으면 그리 하십시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움직일 것이고 그 사이사이에도 각 샘들의 위치가 있지요.

 

가시덤불을 헤치고 깊은 도랑을 향해 내려갔다가

다시 저 쪽 골짝으로 가파른 길을 기어올랐습니다.

가시투성이 길, 사람이 지나다닌 건 언제였던가 싶은.

하준이며 사내아이들이 나뭇가지를 잡아주며 여자아이들을 돕고.

가시 줄기들을 꺾어서 아이들의 길을 만들어주던 한미샘이

휘령샘으로부터 안내말을 들은 뒤부터는

가지를 다른 가지에 엮는 방식으로 길을 냅니다.

어느새 아이들이 샘들의 가방을 하나둘씩 메고 있었지요.

돌보지 않은 고사리 넘치게 핀 무덤가에서 첫 번째 다리쉼을 하였습니다.

커다란 옛날 알사탕이 기다리고 있는.

입안에서 움직여지지 않아 손가락의 도움을 받아 다른 볼로 옮겨야 하는 사탕.

침을 질질 흘리며 서로 웃어대고.

, 좋습니다, 이 산자락, 마른 가지 사이로 펼쳐진 하늘,

날은 또 어찌 이리 따숩고 맑답니까.


도대체 그 왕국은 왜 사라져버린 걸까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 지점에서!”

아침뜨락 아고라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다시 이어갑니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는 다음 쉼에서!”

... 이야기가 너무 짧아요!”

더 듣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다음 꼭지를 살짝 더 꺼내주고.

옥샘은 어떻게 이야기를 다 풀어내시는지 대단하다고 느꼈다.’(휘령샘)

그 비밀이라면 아이들이지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때 어떻게 됐겠어?”

그래서 뭐가 필요하겠어?”

아이들의 대답에 다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거리가 담긴.

 

폴짝폴짝 에너지 넘치는 사내아이들 우석이와 현종이를

선발대(정찰대란 이름으로)로 이름 지어주고

가끔 얼마쯤은 정말 앞세워 저만큼 먼저 가게도 합니다.

현종이는 비서역도 맡았군요.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손전화를 전혀 쓰지 않는 샘들도

오늘 만큼은 모두 지니고 있다지요.

학교에도 남은 이들이 있으니 연락을 해야 하고,

사고에 대비해서도 말입니다.

제 가방 옆구리에 들어있는 이 전화를 빼고 넣는 역할도 그가 맡았군요.

옥샘!”하고 불러 돌아보면 아이들이 대개 하는 질문들이 비슷합니다,

어디만큼 왔어요, 같은.

하준이에게는 대변인 역을 주었지요, “옥샘이 한 번에 말씀하시대.”하라고 말이지요.

산이 주는 선물을 챙겨보는 소대장은 현준이가 맡습니다.

벌써부터 아이들은 도토리를 줍고 꿩 깃털을 줍고 벌레의 집을 주웠습니다.

사마귀집도 보고 짐승가죽도 보고 토끼똥 고라니똥도 보았지요.

발견의 기쁨들이 있었습니다.

동굴 하나도 바위 하나도 우리 눈을 사로잡았고 무엇일까 상상케 했지요.

 

직각에 가깝다고들 하는 깔끄막을 올라갑니다.

왜 여기로 가는 거야?”

왜 이렇게 힘든 거야?”

툴툴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휘령샘이 대답합니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때 소현이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옥샘은 늘 이유가 있다고 하시잖아요.”

한데모임에서 제일 많이 한 말이 그것이었을 겝니다.

예컨대 누가 뛰어서 불편했다고 하면 이유가 있을 거야, 물어보자.”

그가 누구인지 물었고, 그에게 왜 그랬는지 얘기를 들었습니다.

책을 꽂지 않았다면 왜 그랬는지, 누가 주먹을 썼다면 왜 그랬는지,

그러면 비난받을 수도 있는 행동에도 숨기지 않고 자신이 했다고 말하고

왜 그랬는지 상황을 설명할 기회가 되지요.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한편 반성하고.

 

끼리끼리 덩어리가 지어지고,

이러저러 비슷한 호흡의 짝궁들이 생기고,

샘들은 아이들 사이사이서 걷고 있습니다.

등산은 온갖 생각과 스트레스에서의 해방할 수 있는 것 같다.

등산을 할 때면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수 있고 개운해지기 때문이다.’(현진 형님)

현진 곁에는 승원이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빠라고 부르며.

해리포터 얘기도 하고 산에 대한 얘기도 하고.

수다에 약한 우리 현진 형님 욕 좀 봤을 겝니다.

건호 형님은 서윤 인서 소현이랑 가고 있군요.

원율이가 험한 길을 거침없이 나아가서 잠시 한미샘을 걱정케 했지만

그동안 본 운동신경이라면 믿을 만합니다.

정말 아주 날아다녔지요.

배정받은 위치가 후반부였던 수연샘,

마음 놓고 아이들과 천천히 걸으면서 얘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있군요.

하음이가 정인이 손을 잡아주며 같이 걸었고,

세영이와 소현이가 나란히도 가고,

하음이가 쩔쩔매는 수연샘 가방을 메주고,

정인이는 맨손으로 땅을 짚고 기어오르는 수연샘한테 제 장갑을 빌려주려 하지요.

산을 오르면서 길인 듯 아닌 듯한 길을 걸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여럿이 함께여서 힘내서 잘 다녀올 수 있었다. 혼자 가기에도 힘들었는데,

미끄러질까 무섭기도 하고 아이들을 챙기기에도 어려웠었다.’(휘향샘)

간밤부터 지율이는 산에 안 가면 안 되냐 지레 힘들어했습니다.

휘령샘이 같이 걸으며 응원을 했지요.

그래도 가라앉아 있던 지율이 힘듦이 사르르 녹아버리게 된 건 살구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지율이네서 키우는 고양이.

교사로서 또는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 아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흥미 있는 것을

잘 살펴보고 그것을 내어주는 것이 할 일이겠구나 생각했다. 내 스스로에게도...’(휘령샘)

 

, 물꼬다!”

어디요, 어디?”

멀리 물꼬가 아주 조그맣게 보입니다.

풍경이 너무 멋져요!”

저 아래 마을이 동화처럼 펼쳐진 마을입니다.

그때 사람이 싸우기 시작했는데...”

마고산에 얽힌 이야기도 계속되지요.

, 다음 이야기는 다음 쉼에서!”

마술피리 아저씨처럼 이야기로 아이들을 몰고 가는 산오름이랄까요.

산 하나를 넘어 이제 내리막입니다.

낙엽을 타고 내려가며 나무를 제동장치 삼고.

다리를 덜덜 떨다 나중에는 아주 엉덩이를 붙이고 미끄럼을 타지요.

그런데, 저러다 앞사람에 퉁 박으면, 으윽, 튕겨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샘들이 띄우게 조율합니다.

긴 내리막 아래 또 작은 내가 나타납니다.

수풀에 가려 그만 쉬 발이 빠지겠는.

먼저 건넌 이들이 다음에 건널 이를 위해 기다리고 소리쳐 줍니다.

멀리 내려오고 있는 이들에겐 응원도 하지요.

 

다시 길을 오릅니다.

풍경이 멋져요!”

오른 쪽으로 작은 개울을 끼고 가시덤불들을 해치며 나아갑니다.

가끔씩 선발대를 앞세워가며, 뒤를 돌아 뒷사람들을 기다려가며.

아주 넓지 않더라도 우리 모두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너르고 편편하고 볕이 좋은 곳

어느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어

낮밥을 먹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렸지요.

아무래도 다시 도랑을 건너야겠습니다.

선발대가 먼저 찾아준 곳은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얽혀 다리처럼 놓였는데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다시 길을 더 올라보지요.

마침내 좀 더 안전한 길을 찾았습니다.

물도 말라 있었습니다.

모두 건너 옹색하나 앉을 만한 곳을 찾았지요.

 

어쩌면 마고산이 여기였을지도 모를, 민둥산에 소나무 예닐곱 그루 쭉쭉 뻗어있는 산,

우리 그 아래 볕 좋은 곳에서 김밥을 꺼내고

두 개의 버너에 물을 올렸습니다.

북으로 벽처럼 큰 언덕이 받쳐주고 있는 곳에서.

아기새들한테 목이를 먹이듯 물을 멕이고 김밥을 주는 샘들,

그리고 호호 불어가며 코코아를 마셨습니다.

이 김밥이 정말 맛있다며 집에 가서들도 싸달라 한다지요.

그런데 그 맛이 안 난다고.

그럴 밖에요. 이 산을 오른 뒤에야 나오는 맛일 테니까요.

 

점심을 먹고 마지막 산마루에 올랐지요.

그리고 하늘 향해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들 속에서 우리 노래 한 자락 했습니다.

! 산 아래가 다 보이는 높은 언덕에서 하늘을 보며 신아외기소리를 부르는 게

너무 자유롭고 신명났습니다.

자연 속에서 부르려고 한데모임 때 열심히 배웠구나 싶었습니다.’(한미샘)

중간중간 옥샘의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며 또 물꼬의 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들을 먹으며

즐겁게 산오름을 한 것 같다.’(휘향샘)

 

올랐으니 내려가야지요.

건호 형님은 정인이랑 노래를 부르며 내려옵니다.

발목 접지르고 넘어지고 손이 새카매져도 아이들이랑 손 붙잡고 걷는 것,

어른 아이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 산행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아이들과 더욱 돈독해진 기분이고 이제야 아이들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쉽다.’(수연샘)

 

마지막 내를 건넙니다.

가 쪽은 얼었지만 날이 푹해 가운데는 물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건널 수 있는 지대를 찾았지만, 발목까지 적실 물높이.

우석이가 먼저 가다 그만 빠지자,

아예 철벅거리며 사람들을 위해 징검돌을 놓는다고 놓았는데...

잠깐! 모두 아래로 돌아서 가기로!”

앞서 가던 제가 댐 같은 곳에서 양다리를 벌려 지탱하며

나무다리를 밟고 건너오도록 돕지요.

하지만 말 안 듣는 녀석들이 있지요. 안내가 안 들리는 아이들이 꼭 있습니다.

그예 물 흐르는 곳으로 가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요.

도착한 샘들이 징검돌 놓던 곳을 보강해서 건너는 아이들도 있었네요.

 

바로 마을로 이어지는 큰길입니다.

이제는 샘들과 함께 차례 없이 걸어갑니다, 맨 뒤만 제가 가기로 정합니다.”

하준이가 비니모자를 빙빙 돌리다가 그만 놓쳤는데,

수로로 슈웅하고 날아가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보는 영상장면 같아서

다 같이 정말 많이들 웃었습니다.

여유도 생긴 거지요, 이제 산을 나왔다 이겁니다.

힘들다던 아이들이 갑자기 쌩쌩해져서 아주 달리다시피 학교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석이가 신발이 흠뻑 젖었습니다.

괜찮다는 걸 끌어앉혔지요.

아직 1km가 넘게 남은 길입니다.

샘들은 이미 다들 앞으로 갔고,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 신겼습니다.

젖은 신발은 저(우석)더러 들게 하고.

벗어준 양말 안에 발꿈치가 구멍 나긴 하나 낙타양말을 하나 껴신었던지라

아주 맨발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몇 발을 가자 수범이 발도 젖은 게 보입니다.

젖은 발을 벗겨 나머지 양말을 벗어 신기는데

마침 희중샘이 돌아보며 자신이 맨 가방에 양말 있다며 꺼내주었지요.

 

돌아왔습니다. 무사히. 다섯 시간 동안 들어갔던 산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즐거운 소풍길이었습니다, 산과 하늘과 따뜻한 차와 김밥과 노래와 함께한.

자주 맨발로 사는데도 겨울이 오고 한참을 양말 속에 살았더니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 고단했던가 봅니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 별 사고 없이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컸겠지요.

교무실에서 잠시 널부러집니다.

곧 저녁 밥상을 차리러 갈 거지요.

아이들은 여전히 뛰어다니고.

그러다 어디선가 툭닥거리는 소리가 나고.

현준이가 계속 놀린다며 큰도윤이가 그예 한바탕 울었는데,

현준이가 사과하자 바로 손을 잡고 놀러나갔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고 나서 사소한 일이 원인일지라도

관계가 틀어진 사람과는 그 관계를 쉽게 회복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현택샘)

그래요, 아이들이 그렇지요. 그래서도 아이들이 좋습니다.

 

아이들 스물다섯, 어른 열둘이 산을 타는 동안

학교에는 태희샘이 아직 몸을 회복 못한 형원이와

가벼운 통증이라고는 하나 다리가 아픈 승연이와 남았더랬습니다.

(“승연아, 지난여름에도 못 갔는데 다음 계자에선 꼭 같이 산오름 하자!”)

뒤란 아궁이 앞에서 장작불을 넣던 학교아저씨도 계셨군요.

처음에는 산행에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만 가득했는데...’(태희샘)

기꺼이 남아준 태희샘이었습니다.

일단 내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해. 이 공간을 잘 알고 있는 사람,

학교아저씨와도 원활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무엇보다 아이들 둘을 잘 건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요.

오붓하게 셋이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며 수다도 떨고,

사람들이 더 개고 떠난 이불도 개고 청소도 하고.

승연은 설거지를 돕기도 했다지요.

설지를 혼자 하는데 앞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데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물꼬에 와서 아이들과 함께하고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것도 좋지만

참 좋은 샘들을 만난 것 같아 행복하다는’(태희샘)

태희샘은 한 번도 요리를 혼자 해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물꼬 부엌의 그 커다란 솥단지 앞에서 얼마나 난감하였을지요.

미리 내놓은 국국물을 끓여 어묵을 투척하고 파를 썰어 넣는 일이 전부였을지라도

처음 하는 이에겐 결코 쉽지 않았을 일입니다. 일단 양이 많으니까요.

산 식구들이 마을길로 내려설 무렵

전화 자꾸 해서 미안하다며 몇 차례 확인 전화를 해 온 것도 그 걱정이었던.

그는 오늘 어묵탕을 끓이며 한 세계를 건넜을 것.

 

돌아오자마자 늘어지기 전 휘령샘과 건호 형님이 가방을 정리하고,

태희샘이며 휘향샘이며 해찬샘이며 현진 형님이며 아이들을 씻기고

나머지 샘들이 아이들 옷정리며 머리 말리기를 맡아 움직였습니다.

물꼬 생활 며칠이면 엄청난 팀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다나요.

채성이도 건호 형님을 도와 가방을 털었지요.

저렇게 익혀가며 새끼일꾼이 될 겝니다.

그리고 어묵탕을 먹었지요.

비로소 샘들이 숨을 돌리며 늘어졌는데,

아이들은 아직도 뛰고 있었습니다.

그럴 줄 늘 알지만, 보고 있으면 참으로 놀라운 존재들!

 

그런데, 살림이란 건 참... 돌아서면 점심, 또 돌아서면 저녁

사람이 모이면 잠자리와 먹을 게 제일 큰일이지요.

어묵탕을 먹고 또 쌓인 설거지.

태희샘이 또 먼저 일어섰습니다.

그제야 다른 샘들도 움직여 설거지가 끝났지요.

우리(사람들) 뒤에 언제나 그런 노동들이 있는!

어묵탕이 남았군요.

길에서 파는 어묵처럼 통으로 혹은 절반으로 들어갔던 어묵을

잘게 잘라 국으로 내놓은 저녁 밥상이었습니다.

애호박을 열한 개나 썰어 전도 부쳤네요.

이렇게 많은 애호박전을 처음 보았다고.

원 없이들 먹었군요.

 

한데모임’.

우리는 왜 산으로 갔던가, 품고 갔던 숙제를 꺼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답을 했지요.

모험을 찾아서, 재밌을라고, 협동하라고, 건강하라고, 자연을 배우라고, 좋은 공기 마시라고, ...

모리스 에르조그가 안나푸르나를 초등하고 썼던 책에서 마지막으로 쓴 구절이었던가요,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

그렇겠지요.

안나푸르나 같은 큰 산을 다녀온 게 아니어도

우리 가슴속에 안나푸르나 하나씩 들앉았습니다.

산오름을 하며 힘든 길 쉬운 길 평탄한 길 재미난 길을 걸으며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옥샘께서 산오름 자체만으로도 배운다고 이야기하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휘향샘)

살다보면 어려운 순간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때도 오늘처럼 그렇게 어깨 겯고 설컹 넘어가봅시다!”

 

오늘의 대동놀이는 강강술래입니다.

두말 할 것 없이, 그냥 즐겁다. 즐겁고 신명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을까.’(수연샘)

장작놀이이가 이어졌지요.

모닥불 속에선 감자가 익어가고.

불싸라기 하늘로 멀리멀리 사라지는 속에

불가에서 노래가 떨어질세라 우리들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인디언놀이도 빼먹을 수 없었지요.

검댕을 묻혀가며 온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현진 형님과 장난치던 세영이 무릎이 까지고 말았군요.

, 우리의 세영, 노는데 그럴 수도 있죠, 하며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교무실에 약을 바르러 왔더랬답니다.

강강술래 등 여러 놀이를 신명나게 하고 장작놀이까지 하니

또 한 번 물꼬에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휘향샘)

 

마지막 밤이라고 모둠 하루재기도 아주 늦습니다.

머리맡에서 책을 오래 읽어줄 것도 없이 잠들이 들었지요.

이어 샘들의 하루재기.

현진 형님은 샘들이 이리 힘든 줄 몰랐다 했습니다.

그런 것을 헤아리며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거겠지요.

 

마지막 밤이 깊어갑니다. 짧은 밤입니다...

 

아침밥: 떡만둣국과 흑미밥, 오징어젓갈, 어묵볶음, 단무지무침, 그리고 귤

낮밥: 김치김밥, 핫초코, 파이와 사탕, 그리고 귤

저녁밥: 백미밥과 카레, 불고기, 어묵국, 애호박부침, 김치, 그리고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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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4 2020. 1.23.나무날. 비, 축축하게 옥영경 2020-03-02 158
5153 2020. 1.22.물날. 오후 짤끔거리다 저녁비 옥영경 2020-02-21 210
5152 2020. 1.21.불날. 맑음 옥영경 2020-02-20 211
5151 2020. 1.20.달날. 아침에도 밤에도 눈발 옥영경 2020-02-20 230
5150 2020. 1.19.해날. 아침 이슬비 옥영경 2020-02-20 173
5149 2020. 1.18.흙날. 맑음 옥영경 2020-02-20 191
5148 2019학년도 겨울, 165 계자(2020. 1.12~17) 갈무리글 옥영경 2020-01-28 333
5147 165 계자 닫는 날, 2020. 1. 17.쇠날. 맑음 옥영경 2020-01-28 340
» 165 계자 닷샛날, 2020. 1.16.나무날. 맑음 / ‘저 너머 누가 살길래’-마고산 옥영경 2020-01-28 235
5145 165 계자 나흗날, 2020. 1.15.물날. 맑음 옥영경 2020-01-27 247
5144 165 계자 사흗날, 2020. 1.14.불날. 맑음 옥영경 2020-01-26 214
5143 165 계자 이튿날, 2020. 1.13.달날. 눈발 날리다 해난 옥영경 2020-01-24 234
5142 165 계자 여는 날, 2020.1.12.해날. 맑음 옥영경 2020-01-23 291
5141 2020. 1.11.흙날. 맑음 / 165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0-01-22 208
5140 2020. 1.10.쇠날. 맑음 옥영경 2020-01-20 206
5139 2020. 1. 9.나무날. 해 옥영경 2020-01-20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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