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비 내린다...

 

늦은 해건지기였다.

몸을 풀고 대배를 아흔여섯 배 지날 때였다.

다른 때라면 꺼져있었을 전화였는데, 울렸다.

울린다고 냅다 가서 받는 것도 아닌 이곳인데, 받았다.

어제오늘 수업 시연이며 면접시험이 있었던 젊은 친구였다.

그를 위한 기도였던 대배였다.

옥샘께서 늘 하시는 말씀 있잖아요...”

면접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말했더란다.

아이들이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을까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했던 걸까?

실력으로도 품성으로나 그만한 선생을 나는 몇 알지 못한다.

그이야말로 교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그가 내가 늘 하는 말을 대답으로 냈다니,

기쁘고 고마웠다.

네 배의 절을 마저 했다.

 

사이집 욕실 냄새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엊그제 오수통을 파내 뚜껑을 열어놓고,

어제는 집으로 들어오는 쪽 연결관에 실리콘을 쏘기도 했으나

잠시 잡히는 듯했던 냄새는 여전했다.

어쩌나.

이 멧골살이는 이런 일들이 여럿.

하나 다음에 하나씩 잡아갈 테지.

 

시민연극을 하는 모임에서 연출을 제안 받았다.

90년대 중반 국립극단 워크샵단원으로 1년을 움직였고,

물꼬가 서울 있을 적 어린이극단 물꼬를 다섯 해 꾸렸더랬다.

한 학기 세 패가 돌아가기도 했던.

6개월마다 백 석이 넘는 규모의 극장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지금도 계자에서 연극놀이는 계속하지만

그때 같은 강도는 당연히 아닌.

어른들과 하는 작업에서 잘할 수 있을까?

감독이 있기에 사실 그리 부담이 되는 자리는 아닐.

늘 기준은 물꼬에 보탬일까 아닐까 하는 것.

생각 좀 해봄.

 

곧 나올(이렇게 말한 게 벌써 여러 달 흐르고 있는) 트레킹 책,

출판사에서 드디어 교정지를 보냈다는 연락이다.

먼저 PDF파일로 메일이 왔다.

글이 책이 되고 나면 그야말로 정장 잘 차려입고 외출하는 모양새.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자락 마르디 히말,

역시 사진이 담기니, 훌륭했다. 책이 다 됐다!

 

지난해 6월에 낸 <내 삶은 내가 살게...>의 출판사로부터 인쇄보고가 왔다.

첫 달에 600권 판매로 시작했지만,

책을 정말들 안 읽는 시대.

예전 초판 5천부도 찍던 걸 이제 심지어 500부 찍기도 하고,

예전 10만부가 요새는 1만부만 되어도 스테디셀러라 부를 만하다고.

재작년이던가 출판사들을 좌절케 했던 사건 하나는

아주 가볍기 이를 데 없는,

어린(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친구의 말도 안 되는 책이 어마어마하게 팔렸고,

교보에서 대 작가의 신간 저자사인회는 30여 명 모인 데 반해

바로 옆에서 인터넷 카페의 한 젊은 친구의 사인회는1백여 명이 모인 일이었다고.

저자는 넘치고(한편 출판 문턱이 낮아진 건 또 좋은 현상일수도. 독점되는 건 별로니까.)

작가는 드물다는 출판사의 한숨이 이해되기도.

이름값 높은 유시민조차 모객을 위해 커피 이벤트를 하고

판매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중요한 건 그래도 여전히 종이책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

 

<내 삶은...>12월까지 얼마쯤을 판 기록은,

한편 대단한 숫자이기도.

초기는 네이버에서 베스트셀러 빨간 딱지를 붙여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순위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책의 평가가 그만큼이었을 수도 있고,

또 다르게는 첫 달에 600권을 판매했다는데

그 기세를 몰아가지 못한 출판사 영업력의 한계도 있었다는 평가.

작가가 sns도 하고 해야 한다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부터

더 부지런히 움직이지 못한 내 책임도 있을.

세상이 어째도 여전히 좋은 책을 알아내는,

또는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아내는 독자들도 있음을 안다.

꾸준히 나가고 있다고 하니 반가울.

그렇더라도 물꼬가 받은 인세가 적잖았으니 빚을 안은 셈.

열심히 홍보해야할세.

이 글을 앞에 놓고 계시다면, 인근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 부탁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74 지금은 마사토가 오는 중 옥영경 2004-01-06 2290
6573 3월 4일 포도농사 시작 옥영경 2004-03-04 2289
6572 3월 4일 포도밭 가지치기 다음 얘기 옥영경 2004-03-09 2279
6571 계자 여섯쨋날 1월 10일 옥영경 2004-01-11 2274
6570 글이 더딘 까닭 옥영경 2004-06-28 2262
6569 6월 14일 주, 아이들 풍경 옥영경 2004-06-19 2259
6568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257
6567 6월 14일, 유선샘 난 자리에 이용주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19 2253
6566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240
6565 5월 6일, 류옥하다 외할머니 다녀가시다 옥영경 2004-05-07 2235
6564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옥영경 2007-11-21 2228
6563 2007. 6.21.나무날. 잔뜩 찌푸리다 저녁 굵은 비 옥영경 2007-06-28 2227
6562 운동장이 평평해졌어요 옥영경 2004-01-09 2226
6561 6월 10일 나무날, 에어로빅과 검도 옥영경 2004-06-11 2225
6560 5월 29일, 거제도에서 온 꾸러미 옥영경 2004-05-31 2223
6559 처음 식구들만 맞은 봄학기 첫 해날, 4월 25일 옥영경 2004-05-03 2221
6558 6월 11일, 그리고 성학이 옥영경 2004-06-11 2220
6557 2005.10.10.달날. 성치 않게 맑은/ 닷 마지기 는 농사 옥영경 2005-10-12 2214
6556 2007. 5.31.나무날. 소쩍새 우는 한여름밤! 옥영경 2007-06-15 2212
6555 6월 9일 물날, 오리 이사하다 옥영경 2004-06-11 221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