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렸다. 축축하다. 제법 고였다. 질퍽거리는 땅.

02:35을 지난다. 165 계자활동 기록을 해나가는 밤.

이틀쨋날을 쓰는 중. 아직 나흘이 남은.

옥쌤, 전화주시는 거 잊으셨나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문자가 들어왔다.

계자를 다녀간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전화를 기다리실 터인데,

아무래도 설 연휴 지나서나 통화할 수 있겠다...

 

수행으로 여는 아침이었더랬다. 별스런 날도 아니지만

또 한 생을 사는 아침으로 보자면 늘 별스런 수행이다.

크게 다친 이 없이 끝난 계자에 대한 감사와

시험을 치고 결과를 기다리는 한 품앗이를 위한 기도로 끝낸다.

명절이라고 식구 하나 들어왔고,

학교아저씨는 내일 설을 쇠러 대해리를 나설 것이다.

젊은 한 식구는 외국의 한 도시에서 보내고 있는 중.

할 수 있을 때 어떻게든 그런 기회를 한껏 쓰는 건 지혜다.

하지만 그런 걸 방학이면 외국여행 해줘야 한다는 식의 유행을 따라는 일만은 아니길.

 

사이집 욕실에서 나는 냄새를 아직도 잡지 못하고 있음.

오늘은 파 놓았던 오수통 뚜껑을 덮고 다시 흙으로 덮어 본래대로 해두었다.

정화조냄새가 그곳으로 딸려 들어온다고 생각했던 진단은 틀렸다.

다음 단계, 하나하나 확인해 가면 될 테지.

하수구로부터인가, 정화조로부터인가, 변기문제는 아닌가...

냄새로 봐서는 하수구 냄새가 아니라 정화조 냄새라는 게 유력한데,

욕실의 하수구 쪽을 다 막아두고 다시 냄새를 진단해보자 한다.

 

봄에 내려는 트레킹 책의 추천사를 한 산악인에게 부탁하고자 메일을 보냈다.

지난 주말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중 데우랄리에서 눈사태 있어

(201411월 나는 그곳을 걷고 있었다.)

한국인 교사 4명과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가 실종되었다..

엊그제 MBC에서 파견한 드론 수색팀이 구조대가 표시해놓은 예상 매몰 지점을 발견했지만

눈을 이기지 못하고 일단 철수했다.

눈 속에 사람이 있고,

눈 밖에서 또한 삶이 있다.

전 사회적으로 모두가 슬픔을 혹은 고통을 말할 때

이런 사변적인 이야기는 얼마나 이기적인가 싶으면서도

사람살이가 저마다 지닌 당면한 일들이 있겠거니 하며 메일을 썼다.

인간사가 잔인해서 쓰렸다.

산악인 어르신은 거기서 수색을 진두지휘하며 얼음과 눈과 씨름하고 계실 테다.

그 깊고 너른 눈더미에서 어떤 마음이실지.

오지 않는 또는 닿지 않는 저 컴컴한 눈 아래가

혹여 당신께 무기력으로 전환되지 않기를 바랐다, 부디...

한편 눈 속에 갇힌 사람의 소식이 있으려나 하면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봄은 오겠지,

일을 일단락 짓는 때도 있겠지,

그러면 돌아오시는 때도 오겠지,

그땐 당신이 원고를 읽고 글을 쓸 수 있을 때가 오시겠지 했다.

명절은 가족들과 지낼 수 있으시려나...

산 사람은 또 삶의 몫이 있을 테다.

어디 계시건 떡국 한 그릇은 드실 수 있기를.

그리고 나는 다만 기다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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