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5.흙날. 잠깐 볕

조회 수 411 추천 수 0 2020.03.03 00:01:43


 

보고 싶은으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았다.

찡했다.

보고 싶은, 으로 누구를 부르며 글월을 보내본지 오래.

보고 싶은이 그야말로 보고 싶은으로 읽혀 고마웠다.

이심전심이었다.

설이네.

 

식구들은 집안 어르신 댁에들 모였고,

나는 지나간 20년이 넘는 세월의 명절이 그러했듯 물꼬를 지켰다.

설을 쇠고 추석을 쇠러 가야 할 때

누구는 차를 몰고 가게를 열고 배달을 가듯.

그리고 가야 할 집이 없거나 있어도 가지 못하는 누군가는 물꼬로 올 것이다.

그에게 나는 차를 내거나 밥을 내거나 잠자리를 낼.

아직도 계자 활동을 기록 중이고,

짐승들 밥을 멕이고, 연탄을 갈고, 밥상을 차렸다.

 

학부모 한 분과 늦은 밤의 긴 통화.

이곳에서의 통화는

더러 아이의 이야기를 넘어 그 집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사랑이 어떻게 흐르는지 아름다운 영화 장면처럼 보게도 되지만,

때로 가정이 어떻게 조각나는지를 목격하게도 된다.

가정이 위태로운 건 꼭 성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명절이라고 본 영화 <윤희에게>에서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남더라.

사랑은 자주 어긋지고 비껴가고 돌아가는.

그건 참 할 수 없는일인.

서로가 혹은 상대에 대한 마음을 알기이전이든 혹은 이후든

참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일인 듯.

하지만 긴 세월 같이 산 사람들로서의 의리란 게 있을 테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사랑이 식었다고 없어서야 되겠는지!

아이를 위해서도, 설혹 부부가 헤어지게 될지라도 평온이 오기를.

때로는 헤어지는 게 옳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새끼일꾼들이 주는 감동에 대해 말씀하더라.

당신 아이도 새끼일꾼 할 때까지 물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 그 아이가 새끼일꾼 할 때까지 물꼬를 해야할세.

나는 또 그렇게 엮이고 있었다, 하하.

 

임대형 감독의 <윤희에게>는 좀 더 몇 마디 적어두기.

차근차근 하는 말 같은 영화.

천천히 다가가 충분히 젖는다.

영화는 영화인데, 영화가 책 읽는 것 같을 때를 나는 좋아하는 모양이다.

퀴어영화이지만 가끔 불편을 일으키기도 하는 퀴어물과는 다른,

퀴어도 보편의 사랑 안에 있는 일임을 보여주는 영화랄까.

그게 우정이든 사랑이든 형제애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어쩌면 어떤 주제를 향해 나아가야만 하는 영화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이 영화의 큰 매력일지도.

영화를 보고 감독이 궁금했다.

데뷔작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가 있었다.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찰리 채플린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았다 한다.

삶의 아름다운 한 시기를 보낸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진 감독이라고 일단 정리한다.

힘주지 않고 말하기, 그쯤을 생각하게도 했다.

 

품앗이샘 하나의 165 계자 갈무리글도 한 편 닿았다.

자신이 가진 장점이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나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잃고 부정하고 스스로를 잃어갔던 걸까.

그 즈음 물꼬에 오게 되었다 했다.

이곳에서 따뜻한 사람들을 통해 회복된 이야기로 읽었다.

 

물꼬에서 늘상 하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그 말은 무슨 마법 주문같이 느껴져서,

호그와트 마법학교 마냥 물꼬를 신비로운 곳으로 여기기까지 했다지.

물꼬에는 참으로 때묻지 않은 아이들과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샘들이 있습니다.

(...)

교사로서의 나는, 서툴어도 학생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예전에 생각했던 교사관을 세워나갔지요. 또한 세상에 다양한 학생들이 있듯이,

교사도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물꼬에서는 이러한 모습으로 자연스레 아이들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온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침잠이 많은 그를 매일 아침 긴장한 채로 눈을 번쩍 뜰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물꼬에서, 아이들에게서, 함께하는 샘들에게서나왔단다.

그래서 체력적으로 힘들고 스스로의 부족한 면을 발견할 때마다 실망하던 감정을

모두 행복으로 귀결시킬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지.

산에 가는 날 이른 아침 김밥을 싸면서는 그간 불화했던 엄마를 생각했다고.

영동역에서 아이를 꼬옥 껴안아주는 한 어머니를 보면서 눈물이 터지더라고.

물꼬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니요. 물론 물꼬가 유일무이한 치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길다면 길었던 아픔의 방점을 찍을 수 있게 해준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사는 수많은 나를

긍정하게 되었고, 과거의 밝은 나를 온전히 찾지는 못했어도, 비온 뒤 맑음과도 같은

새로운 밝은 나를 찾게 되어 행복했습니다. 물꼬가 치유의 시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던, 이곳을 소개시켜준 친구의 말이 떠오르네요.

마지막으로 165계자 마지막 날에서의 옥샘의 말씀을 떠올리며 갈무리글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모두들 자신 안에 품고 있는 열정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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