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물꼬 뿐만 아니라 마을이 다 고즈넉하다.
명절 당일에나 외지 차를 볼 수 있을 뿐.
역귀성도 여러 집 되고.
학교아저씨도 설을 쉬러 떠난 학교에서
연탄을 갈고, 짐승들을 멕이고, 만화와 제습이와 가습이 산책을 시키고, 대문을 쓸고.
명절 음식을 하지 않고 지나는 설이라 아쉽더니
이웃마을에서 한 샘이 나물이며 떡이며 잡채며 부침개들을 보냈다.
내가 아니 해도 누군가는 하는.
그래서 또 고맙고, 그래서 또 나도 하는 사람이어야겠다는 마음이.
아들은 외국의 한 도시에 머물고 있다.
아비가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우한폐렴 심각하단다.
‘그렇다네용. 여기 원해 우한이랑 직항편 있던 곳이라...’
2월 한 달 라오스에서 보낼 일정이 있는데,
지켜봐야지 않겠냐는 식구들의 의견이라...
어차피 감기 같은 것 아닐까,
면역력이 무너진 사람은 걸리고 건강한 이들은 모르고 지나는 그런.
설마 발이 묶이기까지 할까 싶지만...
계자 기간에 들어왔던 아보카도가 한 상자 있었다.
샐러드로도, 그냥도, 빵에도 두루 먹었다.
아직도 남은 몇 알.
부엌칼로 반을 자른 뒤 커다란 씨가 붙은 쪽을 한 손바닥으로 감싸고
칼을 내려쳐 꽂아 살짝 비틀면 씨가 쉬 분리된다.
내리쳐 날이 씨에 꽂힐 때의 그 시원한 맛이 있다.
야물게 씨를 내려쳤는데,
으윽, 너무 익었던 거다. 그만 씨가 미끌거렸네, 칼은 엄지손가락을 치고.
뼈가, 뼈가 아팠네.
어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더 손을 못 대겠는 통증이다.
이건 또 몇 날을 가려나.
상처를 대체로 오래 앓는 편이라...
그런데 이런 일이 있고 보면 그것이 또 마음을, 움직임을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사는 일이 날마다 매순간 공부라.
연휴로 학교가 텅 빈 지 여러 날, 기락샘이 온지 닷새라고!
와, 노니 시간이 참...
기락샘은 하버마스의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어간다.
그런 것만도 훌륭한 일이다.
이번에 하는 프로젝트의 이론적 틀을 위해서라고.
나는 나대로 계자활동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계자 동안 몸을 많이 뺄 수 있었을 땐 계자 중에 했던 일이다.
그렇다고 밥바라지까지 하느라고 못한 건 아니다.
너무 무리해서까지 기록을 계자 기간 중에 해야 한다는 강박을 이제는 놓은.
아이들 보내놓은 부모님들 마음을 헤아려 소식을 담는 의미가 컸는데,
이번에는 하다샘이 밤마다 사진을 올려주어 마음을 좀 덜기도 했던.
그런데 계자가 끝나면 끝나는 대로 이곳의 일상이 또 있는.
그래서 더 늘어질 수가 없는.
곧 출판할 트레킹기의 교정지가 출판사로부터 와 있다.
출판사에서 2교까지 보고 교정지를 뽑았고,
내 손에서는 초교인 셈인데...
한 드라마작가의 지나간 작품을 연이어 보다.
따뜻했다.
자기분야에서 잘한 결과들이 사람을 기운 나게 한다.
잘 가르치고, 글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165 계자가 끝나고 샘들의 갈무리글들이 닿고 있다.
오늘은 새끼일꾼 현진 형님의 갈무리글이 들어왔다.
‘말을 적게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내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를 못하는 게 스스로 고치고 싶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물꼬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운 거 같아 좋았다.’
로 시작하고 있었다.
일주일이란 시간 정말 감사하다고, 정말 많은 것 느끼고 경험했다고,
항상 잊지 않고 살겠다고 했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샘들을 말하고 있어서도 좋았다.
물꼬에 모이는 너무나 훌륭한 청년들(물론 새끼일꾼들 포함)을 보며
그들을 기억하고 증언해야 할 의무가 내게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니까.
‘휘령쌤의 철저한 준비성을,
태희쌤의 어린나이에 불구하고 카리스마와 말을 잘하는 모습을,
한미쌤의 언제나 웃으시며 남에게도 긍정적인 힘을 전파해주는 모습을,
건호쌤의 글집 한 장 한 장마다 준비해야하는 것을 꾸준히 메모하는 모습을,
휘향쌤의 아이들 관찰하는 모습을,
해찬쌤의 무덤덤하지만 일을 잘하는 모습을,
도은쌤의 아이들 옆에서 잘 놀아주는 모습을,
서영쌤의 언제나 도움이 될려는 모습을,
수연쌤의 끝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을,
하다쌤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현택쌤의 보기만 해도 웃음 나는 힘을 닮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