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7.달날. 비, 질기게

조회 수 406 추천 수 0 2020.03.03 00:03:56


 

어제 늦은 오후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도 종일 내렸다.

제습이와 가습이도 온종일 저들 집에 들앉았다.

 

어째도 물꼬, 어차피 물꼬!”

무슨 말 끝에 나왔던 그 문장을 곱씹고 있었다.

우리 어째도 어떻게든 하고야 만다,

어째도 물꼬는 그런 의미였던가.

우리는 부자이지도 않고 어차피 물꼬이니 있는 것으로 충분히 산다,

어차피 물꼬는 그런 뜻이었나.

 

물꼬는 기숙사로 쓰는 달골 햇발동과 달리 학교 해우소는 재래식이다.

볼일을 보면 한참 있다 소리가 들리고,

저 아래 시커먼 재미난 세상이 있는.

날씨에 따라 냄새가 심한 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보다 깨끗하고 쓸 만하다.

문제는 겨울,

무슨 화장실 가는 일까지 힘을 내고 용기를 내고 각오를 해야 되누 싶지만

그렇다, 이 지독한 겨울의 멧골에서는.

여름이라도 가는 길이 멀어 참았다 화장실을 가고는 하는데,

겨울이면 더하다마다.

이 대해골짝 바람을 가르고 나서야 하니 말이다.

예컨대 설거지를 할 때

거의 마칠 양이면 참았다 간다, 다녀왔다 다시 고무장갑을 끼기는 퍽 번거로우니.

학교에서 일을 마치고 달골로 올라올 거라면

더구나 조금 참았다 서둘러 일을 끝내고 달골 욕실로 간단 말이지.

오늘 저녁도 그런 순간이었는데,

, 수돗물을 잠그고 일을 멈추고 가마솥방 문을 열고 현관 문을 열고

세찬 겨울바람을 가르고 뛰어가 해우소 문을 열었더라.

끝내고 달골 와서 보자던 일, 딱 마음 접고 해우소 가서 기분 좋게 볼일 보고

여유롭게 마저 일을 하고 올라왔더라.

생각해보면 많은 순간이 그렇다.

불과 5분도 안 되는 시간을 마저라는 말에 갇혀

그예 무리를 하고는 한다.

운전만 해도 그렇더라.

아침잠도 그렇더군.

그냥 하던 것 딱 멈추고,

그게 화장실 볼일이든, 문을 닫고 오는 일이든, 물건을 가지고 오는 일이든

그거 하고 다음 일을 하기로!

 

재작년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던 한 해, 어깨를 심하게 앓았다, 응급실로 실려 갈 만치.

시작은 그렇더니 같은 강도로 만성이 되었고, 한 해를 다 채울 때까지 그러했다.

돌아와 왼쪽 어깨가 많이 회복 되었고,

통증으로 잠을 깨거나 일을 못할 지경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러나 퍽 곧았던 자세가 좀 무너졌고,

몸풀기 때 누워서 팔을 양 옆으로 뻗어보면

왼쪽이 오른쪽처럼 바닥에 닿지 않고 허공에 떴다.

건강문제만이 아니더라도

나를 스쳐간 시간들은 그렇게 또 몸으로 남더라.

슬픔도 기쁨도 몸으로 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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