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8.불날. 흐림

조회 수 427 추천 수 0 2020.03.03 00:04:54


 

계자가 끝나도 아직 끝나지 않은 교무실인데,

지난주 물꼬 논두렁 한 분이 도움을 청해왔더랬다.

곧 목조주택을 지으려는데 사이집을 짓던 경험을 나눠주십사 하는.

같이 모델하우스도 보고 건축업자와 만나는 자리에 함께해 주었으면 하는.

내 실패는 좋은 경험을 남겼고,

그래서 집을 짓겠다는 이들에게 때아니게 건축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공동체의 실패도 그랬듯(물론 이건 개인의 실패도 포함한다).

 

간밤 늦도록 일이 많아 두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달골 발.

학교에 내려와 연탄 갈고 만화와 습이들 밥 주고 황간에 도착하니 08.

먼 길이었다. 곤지암까지 간 걸음에 수목원 화담숲도 보고 오다.

겨울이라 닫힌 곳이 많았으나 전체 느낌을 알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꽃이 넘쳐도 좋으나 꽃의 꿈을 품고 있는 땅에 귀 기울이는 시간도 좋더라.

자작나무 숲은 어디라도 매력적이며, 이끼원은 낮은 목소리 같아 좋았다.

소나무 사이를 걸어 내려올 땐 맨발로 왔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가, 그것이 겨울을 지났음에 대한 기준.

어째도 봄은 그렇게 온다.

 

명상정원 아침뜨락의 측백나무를 분양한다 하고 뜻밖의 이름들을 본다.

서울 김현진도 그러했다.

반갑고 고마웠다. 잊히지 않아 고마웠고 마음 내주어 고마웠다.

2016학년도 겨울 계자를 끝으로 못 보았던가.

그래도 2018년 바르셀로나에서도 소식 닿았고, 

작년에는 물꼬스테이를 조율하느라도 연락이 닿았더랬다.

일곱 살 때부터 보았던 그 아이가 곧 군대를 간다. 건강하시라.


드디어 계자를 다녀간 아이들의 부모 통화가 시작된다.

30여 분씩이 보통이다.

그러면 몇 날이 걸려야 하나...

그래도 부모에게 아이 부재의 시간을 그리 채워줄 수 있어 또 고마울 일이라.

번번이 빠트리는 가정이 있고는 하던데,

이번에는 형제들이 많으니 그만큼 전화할 곳은 준.

그러니 더욱 놓치는 댁이 없기를.

 

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문화사업단에서 사외면접관으로 와보겠느냐 제안했다.

경험으로 해보라고.

그 분야야 알 길 없지만 사람을 보는 일반론이 또 있질 않겠나.

해보자고는 해놓고 생각이 더 있다.

당락에 크게 영향을 주지야 않는다지만,

한 젊은이의 생에, 그의 밥벌이에 내가 어떤 영향을 혹 끼치면 어쩌나, 아찔할 일이다.

청년실업대란의 날들에 말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다.

 

어려운 시간을 건너가는 한 벗을 곧 만나러 간다.

대부분의 내 관계가 그렇듯 그 역시 물꼬 논두렁에 콩 심는 한 사람이다.

"엄지손가락을 아주 살짝 베었는데 거참... 거기 힘을 주지 않으려니 온 등이 뻐근하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 하나도 우리를 그리 불편케 만들기도 하지.

뭔가 가시처럼, 베인 상처처럼 그대가 가진 것 하나 빼주고 오면 좋겠다,

밴드 하나 붙여주고 오면 좋겠다 생각해 본다.

'친구란 친구의 슬픔을 진 자’,

그대에게 그런 친구가 되는 시간이 있다. 특히 아침수행 할 때.

슬픈 건 내가 져 주마.

기쁨으로 이 아름다운 지구를 걸으시라~"

그 마음으로 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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