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3.달날. 맑음

조회 수 411 추천 수 0 2020.03.05 23:41:01


 

영하 11도의 밤.

푹한 겨울이었던 만큼, 예년의 영하 10도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을 걸,

이번 주 날이 갈수록 내려간다는 기온이어 조금 긴장이.

눈싸라기 아주 살짝 날린 아침.

올 겨울은 두툼한 눈 한 번 없이 정말 가려나.

그래서 달골 드나들기는 수월했다만.

학교로 피난 내려가서 지내지 않아도 되었던.

 

물꼬의 논두렁이기도 한 건축설계사무소 소장님 다녀가시다.

물꼬 기숙사 관련하여 만난 적이 있으니 20년 가까이 되는 인연.

사이집 준공 건으로 왔다가 찻자리가 길어진.

1961년생. 60. 그러고 보니 최근 교류가 잦은 벗이랑 또래.

아흔이 넘어가는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물꼬에서 시낭송회를 하셨을 적

몇 년생인가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하신 적 있었는데,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주로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될까 서로 묻지 않는 게 예의라지만,

그 사람이 태어난 해는 그를 둘러싼 여러 환경을 이해하는,

다시 말하면 그를 형성한 사고를 이해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셨던.

소장님도 글을 쓰고 싶어하셨더라지,

고등학교 때 이상의 <날개>를 읽고

그가(이상이) 건축가인 걸 알고는 건축과를 가셨더라나.

 

이제라도 글을 쓰십사 했네.

가을학기에 읍내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지 싶다며 거기 오셔도 좋고,

물꼬도 뭔가 도울 일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며 글을 쓰시면 피드백도 해드리겠다 했다.

나로선 제법 흥미로운 일이겠다.

벗과도 글쓰기를 함께 할 올 1년이니 

61년생 남자와 여자의 삶을 동시에 들여다 볼.

 

사이집 욕실에서 냄새가 나기 반 년.

내내 머무르지 않으니 다른 일에 밀렸다가

최근 집중적으로 그 진원지를 찾고 있음.

오늘은 사진으로 검토.

간간이 찍었던 사진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나 해당 건이 없더니,

사이집을 짓는 동안 작업과정을 사진으로 좀 남겨 달라 부탁했던 무산샘한테서

오늘에야 사진들이 닿았네.

배관을 추적해 봄.

집이라고 열댓 평, 그것도 방방이 있는 게 아닌 그저 큰 통으로 된.

그러니 복잡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 오수통 문제 아니었고, 다음 배관 문제 아니었고, 그렇다면?

 

엊그제 만난 스물여섯 청년을 위해 글월 하나 보내었네.

스물여섯 나이에도 그리 순량한 얼굴을 갖고 있다니.

 잘 컸더라.

 일단 한껏 그대 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네.

 굳이 나이를 들먹이자면 서른까지는 좀 그래도 되잖을까.(넘는다한들!)

 누가 우리 인생의 때를 결정한단 말인가.

 하고픈 걸 실컷 하고 있으면 또 다른 목표와 목적이 눈앞에 나타나리라.

 책은 좀 읽으면 도움이 크지 않겠나 싶으이.

 나는 멧골에서 아주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네.

 가끔 사람들이 이 거친 곳에서 어떻게 지치지 않고 살아가냐 물어오는데,

 날마다 하는 수행(기도를 포함한)과 좋은 뜻을 지닌 동료들과 아이들도 대답이겠지만

 또 하나는 내게 힘을 주는 한 장면이 있다오.

 냉전시대의 한 영화인데, 제목도 생각 안 나는,

 시베리아 벌판 한 가운데에 있는 감옥에 갇힌 CIA 요원이

 언젠가 탈출할 때를 위해 날마다 벌판을 달리며 몸을 다졌네.

 영화의 결론도 생각나지 않지만 아마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아, 저거다, 그래, 생이 어떻게 흘러가도 날마다 저렇게 살아야겠다,

 그쯤의 생각을 어린 날 나는 했을 테지.

 그렇게 날마다 일상을 열심히 달리며 힘을 얻고 있네.

 좌절이 좀 덜하더군.

 어쩌면 그대에게도 그런 힘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한 제안이었네.

 마당으로도 나가 볕 아래 열 걸음만 걸어달라는.

 딱 스무하루만 해보시게.

 그러면 입맛이 돌고, 그러면 또 다른 움직임을 할 힘이 생길 것이라.

 세상의 중심에 있을 운명이어도(그대의 사주가 그러하였네^^)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리.

 쓰지 않는 자가 어찌 문학상을 타고

 물에 들어가지 않은 자가 어찌 수영대회에 우승을 할 수 있을꼬.(...)’

새해, 부디 그의 삶의 뜨락도 봄날이시라 기원하며 전화번호를 남겼네.

혹 어머니에게 하지 못할 부탁이라도 있거들랑

나 비록 가난하나 서슴없이 내게 그리하라고.

나 역시 스물세 살 아들을 둔 어미라.

 숨고 싶은 시간이 있을 때도 이 인연을 쓰시라.

 나도 누군가에게 아무 조건 없이 받은 그런 환대가 있어 생이 복되었으니

 나 또한 그리함이 옳을지라.

 그러므로 이런 문장을 써도 된다 싶은; "아들아, 사랑해!"

 

가자미가 들어왔다. 산골에서 귀한 음식재료.

밥상이 한동안 또 푸지겠네.

고마운 사람들로 넘치는 멧골살이라.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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