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이다.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잔치를 하지 않은지 오래.

부녀회의 신구갈등이 깊어서였던가, 이제는 그 이유도 가물가물한.

2006년께였다.

눈 퍼부었던 어느 대보름,

물꼬 식구들도 죄 나가 달집 태우는 논가에서 풍물을 쳤던 때를 떠올린다.

아스라한 시간이다.

마을에서는 사라졌어도 물꼬 마당에서 간간이 달집을 태웠다.

가끔 사라진 대보름이 아쉬워 언제 다시 시작은 않는가(내가 제안할 생각은 않고) 기다리지만

제법 젊은 층으로, 그래보아야 60대지만, 이장단이며 마을 축이 바뀌었어도

굳이 누가 나서서 하자고는 않는.

마을 모임이라고는 이제 해를 보내며 하는 대동제, 그것도 가 붙었지만 겨우 회의에 불과한.

마을도 조용하지만, 명절 음식도 대보름 음식도 하지 않고 지나는 올해는 더 쓸쓸한 듯도.

설만 해도 여느 해라면 보육원 아이들이라도 들리고 불쑥 찾아드는 이들도 있건만

올해는 별 기별 없었다.

그러니 두엇 식구 먹자고 지지고 튀기고 하진 않게 되더라.

그래도 설음식이 들어왔더니

정월대보름이라고도 산너머에서 음식이 왔네, 잡채며 곶감이며 사과며.

호두로 부럼을 깨물었다.

 

오늘내일 일이 많다, 고 오는 연락마다 했던 말.

별일 아니고 트레킹기 교정지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거의 보름동안 교정지를 그야말로 안고만 있었더랬네.

오늘내일 교정교열을 봐야 모레 아침 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킬.

서울 가던 기차에서, 아차산 아래 벗네서, 그리고 내려오던 기차에서 보고는

통 손을 대지 못했다.

교정해야지 하고 일주일을 잡아놓고

변죽만 울렸더랬던. 늘 일하는 게 그렇더라. 꼭 몰아서 하게 되는.

특히 글 일은.

휴우.

 

계자 직후에 왔던 샘 하나의 격려성 메일에 이제야 답을 쓰다.

꼭 바쁠 때.

그렇게 또 해찰마냥 이것저것 생각나는 것들을 잡기도.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해준 그였네.

십수 년 전의 첫 밥바라지 자리에서부터 자주 밥일에 손 보태는 그.

그 인연으로 형제애가 생긴. 물꼬의 적지 않은 인연들이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우리집 아이만 해도 그 댁 어른들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 댁 아이들을 제가(우리집 아이가) 건사해야 하는 줄로 아는.

 

(...)

엉거주춤 살다가 자유학교 부흥회(ㅎㅎ계자요)를 지나며 힘 좀 얻다가

그게 참, 마약 같은 거지요, 힘들어 죽겠는데 힘이 나는,

어느새 또 병든 닭모양 졸음에 겨웁다가...

 

영하 15도로 내려가는 며칠이었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그런 모진 날이 길지 않아

그나마 죽는 소리 덜하고 살았네요.

 

아들이 커서 좀 좋음.

샘도 그럴 거야요. 그것들 크고 나면 살 만해짐.

, 물론 그런 건 있더라,

애가 스무 살이 넘고 나니 그동안 사라졌던 어떤 게 다시 올라오는데,

예컨대 사는 데 아무런 끈이 없던 것 같던,

그만 다 놓아버려도 되겠는 그런 마음이 되살아나는.

삶이 좀 고단했던 모양이지.

역시 쉽지 않았어요, 이곳에서의 날들은.

 

그래도 또 괜찮은 것들이 있음. 그러니 살지.

하고 싶지 않은 건 보다 더 안 할 수 있는 용기가 더욱 생김.

적어도 오늘은 그러하오. 내일은 모를 일이지만.

여기서 산 세월이 헛것은 아니었단 게야.

샘도 그럴 겝니다. 샘의 세월이 어디 안 갔을 거임.

 

또 연락합시다.

새해, 건승하기로.(어째 우리는 건투를 빌고 건승을 외쳐야 하는가...)

다시 인사하리다. 새해, 우리 청안합시다!

 

- 그대를 참 좋아하는 옥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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