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16.해날. 눈

조회 수 592 추천 수 0 2020.03.13 23:34:21


 

겨울을 보내느라고 안간힘을 쓰는 멧골이다.

눈 나린다.

일찍 온 봄의 첫마디로 보다

아직 가지 않은 겨울의 마지막 말로 듣는다.

세상에 나온 지 6개월이 갓 지난 진돗개 가습이와 제습이도

눈밭 푸닥거리를 했다. 둘이 한바탕 붙어 진흙탕에서 진흙이 되었다.

 

싸락눈 날리더니 정오 무렵 아주 굵어지고 있었다.

함박눈이 날리자 들어와 있던 대처 식구들이 서둘러 나가고,

김치와 쌀과 마실 물을 길어 달골로 왔다.

거기에 이미 있는 라면 몇도 있으니 달포도 지내겠는.

 

한참을 또 게을렀다.

내가 한 선택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이란 없었다.

암트스프라헤를 생각한다.

알려진,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전범재판에 섰던 아돌프 아인히만의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의 글로든 여러 사람이 다루었지.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슈비츠의 죽음으로 내보내는 게 힘들지 않더냐 물었을 때

아인히만은 대답했다.

쉬웠다고, 우리의 언어가 그것을 쉽게 해주었다고.

암트스프라헤!”

암트는 관직, 스프라헤는 언어라는 뜻이라니까

관료적인 언어를 말하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면 가책도 별로 느끼지 않는다.

시킨대로 했다는 거다.

나치는 그렇게 움직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말, 자기 행동에 책임지지 않는 언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관의 명령이어서, 회사 정책이라서, 어쩔 수가 없어서, ...

많은 이유로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 순간순간 우리는 분명 그것을 선택했다!

내 게으름은 무어라 말해도 내 선택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등을 곧추세우나니.

 

눈이 펑펑 내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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