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또 눈 쌓인 새벽이었네.
달골 주차장 깔끄막을 쓸다.
아침햇살에 길에 있는 눈은 금세 사라지고.
아침 8시 달골에 굴착기 소리가 컸다.
햇살 퍼졌어야 습이네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예닐곱 모여 일을 하는 게 달골 길 저쪽 가로 건너다 보였다.
그랬구나, 어제 달골 길을 쓸던 이들이 그래서였구나,
산판을 시작하려나 싶었더니 저 작업을 하려...
10시 운구차가 올라왔다.
저쪽 언덕배기 묵정밭에 그의 아내를 묻고 몇 해,
엊그제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를 보살피고 십 수년,
외려 그때 더 정정했던 그니는 혼자 살며 급속도로 늙어갔다.
친절했던 그니가 퉁명스러워진 것도 그때.
늙어가며 그리 변하는 한 까닭은
안 보이고 안 들려서 더 그럴 수도 있었을 것.
멧골에서 또 한 사람이 강 건너 저승으로 갔네...
눈으로 아주 길이 막힌 것까지는 아닌데,
25일까지 보내야 할 새 원고 초안을 물고 한 주 동안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 했더니
보급투쟁한다고, 마침 물꼬랑 멀지 않은 곳에 출장을 가던 논두렁 한 분 다녀가시다.
운구 행렬로 길이 막혀 계곡에 차를 세우고 걸어올라 왔다지.
나가는 차로 잠시 마을을 빠져나갔다 오다.
며칠 떠나지 않았던 책상 앞, 어깨깨나 긴장했다.
이런 날은 따순 물에 몸을 담그면 얼마나 좋은가.
산 너머 읍내 목욕탕을 들렀는데,
거의 다 저녁이어서 그런 줄 알았더니 요새 통 사람이 없다고.
문을 닫는다는 저녁 8시가 한 시간 남은 때였다.
“이제 안에 아무도 없어요? 무서운데...”
“한 사람 있어요.”
코로나19는 벌써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나 보다,
해가지자마자 일찍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았고,
이 읍내의 가장 번화한 길에도 사람이 없었다.
이단이라 알려진 대구의 한 교회에서 확진자가 나왔고,
그가 수퍼전파자가 되어 집단감염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닌가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혼자 등을 밀고 있는데,
머리가 짧은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내 등을 대란다.
아, 서로 밀어주자는 말씀인 가보다,
시골이라도 요새 이런 거 잘 없다던데...
“아니요, 아니요, 고만요. 딱 손이 안 닿는 부분만요.”
그런데도 여기저기 시원하게 밀어주시더니,
어라, 돌아서서 해드리려는데 당신은 날마다 오니 안 해도 된다나.
억지로 비누칠 해드리고 마사지 조금.
그때 중국인 여자 둘이 들어와 청소를 하는데
(여기 주인이 중국인이라지. 일하는 여자 둘도 한국어를 거의 못하는 이들.
지역상권들에도 이렇게 중국인들이 는다.)
그 할머니, “여긴 내가 할게.” 하시며
거울을 비눗물로 닦고, 여기저기 벽도 닦으시네.
하! 감동이더라. 어른이 달래 어른인가 싶은.
내가 다 고마웠네.
'너에게 다가가는 일'이란 게 이런 거 아니겠는지.
물꼬에서, 교육에서, 구현하려는 마음도 그런 거 아니겠는지.
곧 나올 책의 추천사 셋 가운데 한 분은 유명인인데
요 며칠새 언론에 오르내릴 만큼 복잡한 일에 연루되었다.
사실이야 모른다.
그나저나 인쇄를 다 한 뒤라면 얼마나 난감했을 것인가.
출판사(아, 이 인연들도 아침뜨락 측백을 분양하셨네!)와 의논하여 추천사 부탁을 거두게 되었다.
그간 들인 힘을 생각하자면 사는 일이 억울할 때가 얼마나 잦을까.
다른 분께 부탁하거나 추천사 둘로 마무리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