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흙날 흐리다 갬, 어서 오셔요!

조회 수 1270 추천 수 0 2005.09.19 23:50:00

9월 10일 흙날 흐리다 갬, 어서 오셔요!

입 벌린 고래 뱃속으로
- 대해리 문화관 문 여는 잔치에 부쳐

확대경을 장치해놓고 그 속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그림을 돌리면서 구경할 때,
이를 일컬어 요지경이라 부르지요.
고래 뱃속,
가끔 신화에 등장하는 그 배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있는 요지경의 대명사쯤 되겠습니다.

고래 뱃속 같은 큰 방!
자유학교 물꼬에서 가장 컸던 그 방(교실 두 칸)에서 우리는
장구도 치고 소리도 하고 연극도 하고 춤도 추고, 갖가지로 놀았지요.
더러 어른들을 모시고 마을 잔치도 하고,
가끔은 전문공연패들을 불러들여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오달지게 신명도 냈더랍니다.

그런데, 병든 고래였는 걸요.
양 측면 벽으로 난 뻥 뚫린 창 같은 구멍은 이르게 겨울을 불러들였고,
비 스민 천장은 얼룩져 궁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으며
엉성한 창문으로는 겨울바람이 숭숭한 데다
바닥은 삐걱대다 못해 널이 하나씩 꺼지기 일쑤였지요,
여름은 또 얼마나 더웠게요.
잔치 벌일 적마다 한껏 펼쳐 보일 무대가 참말 아쉬웠더랍니다.

이제,
한동안 뚝딱이고 먼지 풀풀 일던 고래방이 대해리 문화관으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어르신들도 더는, 앞 사람의 머리에 가려 안 보이는 무대를 보려
이 쪽으로 저쪽으로 목 길게 빼며 고개 옮겨다니지 않아도 되지요.
그나마 다들 아는 옛 얘기 혹부리영감이나 흥부놀부라면 모를까
도대체 소리가 안 들려 뭔 말인가 하며 그만 지리해버리던 시간일랑 없을 테지요.

공연이 없을 땐 아이들의 놀이터로, 때로 널찍한 공부방으로도, 귀한 쓰임을 가질 양입니다.
비라도 내리는 날 근질거리는 아이들이 뛰기도 좋겠지요.
많은 공연시설이 행사가 없을 땐 텅 빈 아까운 공간이 되기 일쑤인 것과는 달리
(넓은 교회당이 주에 두어 차례 예배용으로 쓰일 뿐이거나
혹은 드넓은 절이 법문을 들을 때만 쓰이듯이)
공치는 날 없는 공사판처럼
예는 그리 신바람 나게 쓰일 겝니다.

가난한 학교로서도,
문화에 목마른 지역으로서도,
고맙고 또 고마운 일입니다.
공사를 하도록 큰 힘이 돼준 문화관광부,
득이 될 공사들을 미루고 좋은 뜻을 보탠다 일을 맡아주신 정의훈님
몇 차례나 이 산골까지 걸음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던 윤의식소장님과 양상현교수님,
박덕환 면장님을 비롯, 이장님이며 도와주셨던 지역의 어르신들,
모두모두 고맙구 말구요.

드디어 오늘, 대해리 문화관 문 여는 잔치를 합니다.
바래지지 않는 이 말씀 또 드리고 싶지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운동장 솔과 살구나무 사이를 걸어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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