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31.불날. 맑음

조회 수 504 추천 수 0 2020.05.06 08:18:53


 

여름 같아, 라고들 한 마디씩 뱉는 한낮이었다.

제습이를 데리고 사이집 마당 풀을 매고,

아침뜨락의 옴자 눈썹 쪽의 원추리 사이 풀도 맸다.

이웃이 건너왔길래 늦은 낮밥으로 국수를 말아냈다.

 

살짝 흐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하는 오후였다.

달골이 학교보다 추워요...”

학교아저씨가 말했다.

학교 꽃밭은 수선화가 시들어 말랐다.

아침뜨락 옴자에선 한창 벙그는 중.

햇발동 구석은 겨우 촉을 내밀고 있고.

 

숨꼬방 앞에서 대나무 잘라 달골로 더 옮겨

대나무 명상처 작업 이어가기.

곧은 것만 고르다 보니 앞서 잘랐던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촘촘하게 붙였지만 대나무들 사이에 틈이 있다.

굳이 막을 쳐서 시선을 완전히 차단할 건 아닌.

안에서 답답하지 않아서도 좋고,

오히려 안에 누군가 있다는 움직임이

외려 궁금해서 안을 기웃거리는 일을 만들지 않을 수도 있을.

설핏 집안이 보일락말락하는 한옥 담장 같은 설렘이 있는.

 

아침뜨락에 꽃을 심다.

백리향 스무 포기는 옴자 위이자 오메가 아래,

옴자의 일부 회양목 안으로 있는 한가운데 바위 앞에는 세이지 열 포기.

아고라와 밥못 옆 수로도 또 다듬지.

산짐승들 다니며 어느새 어그러져놓은 작은 돌무데기들 다시 모아놓고.

 

이번에 새 책을 내는 출판사로부터 메일이 들어오다.

코로나19, 이 사태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으니

이제는 책을 내자는.

다음 주에 마감고를 보내고,

금주에 표지 의견을 부탁하겠다 했다.

‘(...) 장기전이 될 상황이고,

따뜻한 봄이 왔고,

마음이 허허로운 이들에게 선생님의 글이 더 필요해진 요즘입니다.’

준비를 다 해놓고 출간에 때를 보자던 시간도 훌쩍 지나 오늘에 이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576 2024. 1.23.불날. 눈 / 끊임없이 자기 해방하기 옥영경 2024-02-07 249
6575 2024. 1.22.달날. 맑음 / 포트락 옥영경 2024-02-07 271
6574 2024. 1.21.해날. 비 옥영경 2024-02-07 248
6573 2024. 1.20.흙날. 비 / 발해1300호 26주기 추모제 옥영경 2024-01-30 390
6572 2024. 1.19.쇠날. 흐림 / 문바위 옥영경 2024-01-29 273
6571 2024. 1.18.나무날. 비 옥영경 2024-01-29 263
6570 2024. 1.17.물날. 비 옥영경 2024-01-29 260
6569 2024. 1.16.불날. 맑음 옥영경 2024-01-29 269
6568 2024. 1.15.달날. 맑음 옥영경 2024-01-29 260
6567 2024. 1.14.해날. 맑음 옥영경 2024-01-29 292
6566 2024. 1.13.흙날. 맑음 옥영경 2024-01-29 291
6565 2023학년도 겨울, 173계자(1.7~12) 갈무리글 옥영경 2024-01-15 478
6564 173계자 닫는 날, 2024. 1.12.쇠날. 맑음 옥영경 2024-01-15 463
6563 173계자 닷샛날, 2024. 1.11.나무날. 맑음 / 바람산 옥영경 2024-01-14 353
6562 173계자 나흗날, 2024. 1.10.물날. 구름에 살짝 걸린 해 옥영경 2024-01-13 332
6561 173계자 사흗날, 2024. 1. 9.불날. 흐림 옥영경 2024-01-11 421
6560 173계자 이튿날, 2024. 1. 8.달날. 맑음 옥영경 2024-01-10 429
6559 173계자 여는 날, 2024. 1. 7.해날. 맑음 옥영경 2024-01-09 665
6558 2024. 1. 6.흙날. 맑음 / 173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4-01-08 447
6557 2023. 1. 5.쇠날. 잠깐 해 옥영경 2024-01-08 39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