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5.해날. 맑음

조회 수 530 추천 수 0 2020.05.28 02:04:34


대단히 먼 길을 떠나는 것도 아닌데,

필요할 땐 금세 달려올 만도 한 길인 걸,

그래도 주중에 한참을 여러 날 비운다고

학교며 달골에서 걸음을 재다.

지난 한 달, 제도학교의 한 분교 출근을 재택근무로 해왔던.

실 업무는 기존 샘들이 도와주고 있었던.

더는 미룰 수 없는.

내일부터 등교출근이라.

 

밑반찬을 해서 대처 식구들을 보내고,

사이집에 새로 심은 잔디뿐 아니라 먼저 심었던 것들까지 흠뻑 물을 주고,

울타리 편백들 역시 그리하고는

제습이부터 달골에서 내렸네.

그래도 가습이를 내렸던 경험이 있어 좀 나았다.

가습이가 그랬듯 제습이 또한 달골 대문 너머로 나는 못가네 하고 버텼다.

도대체 날 어디로 데려 가냐고?’

사이집 앞의 저들 연립주택에서 줄을 풀자마자

벌써부터 분위기가 이상타 두리번거리는 걸 달래가며 대문까지 갔더랬는데.

학교아저씨를 차 뒷좌석에 먼저 타라 하고

제습을 번쩍 들어 학교아저씨의 무릎에 엥겼다.

겁에 질린 눈으로 그 무릎에 철퍼덕 엎드린 제습이.

학교 마당으로 들어서서 차문을 여니

멀리서 가습이가 먼저 아는 체하며 짖었고,

저 또한 지난 겨울계자를 보낸 것이라 이내 나 아는 곳에 왔구나 안도한 제습이의 눈.

먼저 내려와서 호텔 캘리포니아를 차지하고 있던 가습이,

그를 작은 집으로 옮겨주고

큰 집을 형 제습한테 양보케 하다.

둘의 인사는 그예 한 판 몸으로 엉겨 붙는 거였다.

지칠 때까지 서로를 물고 문.

형의 면모를 잃지 않은 제습이, 하지만 가습이도 만만찮지.

한 번씩 그래가며 둘은 관계를 정리할 게다.

어쩌면 야성을 발산하는 푸닥거리일 수도.

그래야 묶여 살 날을 견딜.

 

제도학교를 지원하는 이번 학기는

한 분교에서 근무를 하는데

숙소는 본교 사택이라.

(잠깐! 여기서 용어를 정리하자면, 움직일 세 공간을 본교/분교/물꼬로 일컬음.)

사택에서 본교까지 차로 10여 분.

주마다 불날과 나무날은 본교에서 분교와 통합일정.

코로나19의 날이 어디로 흐를지 모르지만

그땐 또 그때대로의 질서가 생기리.

짐을 쌌다.

얼마쯤의 양식과 옷가지 두엇과, 침낭과 책 몇 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리 살았던가, 가방을 싸고 푸는.

심지어 물꼬 안에서조차 변변한 방 하나 차지하지 못하고 언제든 옮겨 지낼 준비를 하며 산.

사이집이 만들어지고 그 다락에 드디어 방 하나 잡기 전까지.

소사일지를 넘겨받아 3월까지의 기록을 정리하고,

서서히 건축 관련 글 하나 쓰려는 일의 포문을 열어놓고

(그야말로 시작이 반이라. 선언은 결국 마지막에 이르게 하나니).

모든 일이 한꺼번에 온다는 진리대로

트레킹기를 계약한 출판사에서도 메일이 들어왔는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전이 될 듯하니 이제 더는 미루지 말고 책을 내자한다.

그럼 또 그리하면 되지.

다만 제도학교 출근과 맞물려 부산함은 있겠으니

당면하면 당면한 대로.

사실 대체로 많은 일은 그렇게 겹으로 가는 것.

, 또 다른 새날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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