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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 교사, 히말라야 산군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옥영경 저자 인터뷰

제목에서의 안나푸르나는 지상의 안나푸르나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닿고자 하는 어떤 것 혹은 곳이기도 합니다. 잊지 않으면, 잊히지 않으면 마침내 닿게 되는 거기요. 부디 우리 거기 닿기를!(2020.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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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지 않은 나이에 포터도 가이드도 없이, 배낭 하나 달랑 짊어지고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자락을 오르고 돌아왔다! 저자 옥영경은 30여 년간 숱한 산을 오르내렸으며 백두대간을 걷고 애팔래치아 트레킹을 일부 접근한 풍성한 경력의 트레커다. 지금도 산에 살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녀는 세 번째 네팔  여행에서 지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이어 잘 알려지지 않은 마르디 히말에 올랐다. “숱한 여행지 중 으뜸”이었다는 히말라야 산군의 가장 높은 마르디 히말을 이 책을 통해 함께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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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라는 책 제목이 퍽 기네요. 어떤 의미인가요? 

말이 짧고 싶은 사람인데, 사는 일이 늘 뜻대로 되지 않아요, 하하. 처음 제가 내민 제목은 ‘백년이 걸리는 마르디 히말’이었습니다. 서정춘 시인의 죽편 연작시 가운데 하나인 <여행>을 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의 눈보라 속에서 불렀는데, 거기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는 대목이 있지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워낙 사랑하기도 해서 ‘백년’이 그야말로 딱 마음에 들어온 겁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제 트레킹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는 문장을 뽑았지요. 이 문장은 모리스 에리조그의 『최초의 8,000미터 안나푸르나』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입니다. 자신이 오른 안나푸르나 초등의 기록이지요. 제목에서의 안나푸르나는 지상의 안나푸르나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닿고자 하는 어떤 것 혹은 곳이기도 합니다. 잊지 않으면, 잊히지 않으면 마침내 닿게 되는 거기요. 부디 우리 거기 닿기를!

 이 책은 특별한 인연들이 모여 만들었다던데요.

작년에 제가 『내 삶은 내가 살게 네 삶은 네가 살아』라는 자녀교육 에세이를 냈는데, 간발의 차이로 이번 책의 공명 출판사가 다른 출판사에 밀려 계약을 놓쳐버렸더랍니다. 서로 아쉬움을 머금으며 언제라도 한번 같이 책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하던 터에, ‘아, 그럼 일간지에 연재했던 트레킹기를 책으로 같이 엮으면 어떨까’ 하고 뜻이 맞았던 게지요. 일이 이루어지는 게 쉬우려면 한없이 쉽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으니, 뭔가 특별한 출발 같았습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 꼬박 한 해를 머물고 있을 때인데, 한국에 돌아와 계약을 하러 대전역에서 서로를 만나고는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지요. 꼭 객관적인 시간만이 절친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의기상투(意氣相投)라 하나요, 책도 책이지만 서로 삶에 대한 자세가 닮았다고나 할까요? 요새는 출간할 때까지 저자를 만날 일 없이도 얼마든지 진행이 되잖아요. 그런데 출간 직전에도 만나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야기로 지칠 줄을 몰랐지요.

그런데, 어느 날 책을 꾸미면서 공명에서 메일이 왔어요, “삶의 이치가 대견하다”면서. 책을 꾸민 이가 거의 30년 전의 제 학생이었던 거예요. “‘선생님을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선생님과의 글쓰기 수업, 선생님의 가르침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주었다’고 합니다. 저희는 손을 꼭 잡고,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하며 감격해했어요.”라고.

맨발로 걷기를 좋아하시는 이유라면?

좋잖아요! 해보세요. 미사여구 없는 깔끔한 단문 같은, 군더더기를 걸치지 않은 삶 같은, 거치적거릴 게 없는, 그야말로 자유롭다 느껴지는! 맨발이 그래요. 마치 아주 기분 좋은 온도를 가진 물에서 노니는 것처럼, 다디단 바람이 몸에 닿는 것 같은!  맨발로 다니면 자신의 몸을 가장 가볍게 하는 방법을 찾게 돼요. 그래야 안 다치니까. 마치 삶에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찾는 지혜와 닮은 듯한 느낌이랄까. 겉치레를 걷어낸 것 같아져요. 관계로부터도 얽매이지 않는 듯한. 생의 무게가 다 가벼워진답니다!

마르디 히말이 특별한 이유는?

네팔에선 6천 미터 이하는 산으로 쳐주지도 않는대요. 마르디 히말이 5천 미터가 넘는 산이지만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선 동네 뒷산 같은 거지요. 그리 눈에 띄지 않고 거기 있어요. 도드라지는 게 아무것도 없는. 꼭 들어맞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호손의 ‘큰 바위 얼굴’ 같은 거랄까요. 평범한 소년이 마을의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위대한 사람을 기다리는 세월동안 그 스스로 큰 바위를 닮은 사람이 된. 비슷하게 말하자면, 별 볼 일 없는 산인 줄 알았는데 위대한 산이더라, 그런 마음이 들었어요, 마르디 히말요. 나를 둘러싼 평범한 사람들이 위대한 어떤 힘이 아니라 내 굳건한 울타리더라, 그런 말과도 같은. 

그런데 가장 특별한 이유는, 제가 그곳을 갔기 때문이겠지요. 자신이 갔으므로 특별한 곳이 되지 않던가요. 우리가 마주하므로 서로 특별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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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인생에서 여행 혹은 걷기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요?

“당신이 누구냐” 제게 물을 때 제일 앞세우고 싶은 대답이 ‘수행자’입니다. 날마다 수행하며 사는데 어떤 틀을 갖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살아가노라니 사는 일이 그것으로 이미 수행이더라고요. 종교인 선배들에게 그런 농을 하고는 합니다, “저잣거리에 사는 내가 수행하고 살아, 내가 도 닦는다니까!”

여행이 꼭 그렇더라구요. 처음엔 떠나는 게 여행이더니, 나중에는 사는 게 여행이에요. 일상에서도 여행이 되더라는 말입니다. 누구는 0.75평 감옥에서도 우주를 유영하고, 누구는 세상을 다 돌아다니고도 마음의 창살 안에 살지 않던가요. 제게 여행은 곧 일상이기도 하고, 일상이 곧 여행이기도 하고…….

이 책이 실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나서는 이들에게 정보로서는 충분할까요?

“그럼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솔직히 이 책만으로 안나푸르나 일대 트레킹을 나서는 것에는 모자랍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밑그림쯤 된다고 할까요. 크게 어떤 움직임이다, 어떤 분위기다 그런 거요. 세밀한 것들은 인터넷 안의 여러 커뮤니티를 찾는 것도 방법이겠습니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던 몇몇은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명상서로, 또 철학서로 읽히더라고. 어떤 책이든 어떻게 읽느냐는 결국 읽는 이의 몫이 아닐는지…….

코로나19로 집콕이 일상화된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 시대에 이 여행서가 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혜곡 최순우 선생의 옛집에 걸린 편액입니다. 문을 닫아걸면 이곳이 깊은 산중이라는. 산중이 따로 있지 않은 거지요. 마찬가지로 어떤 좋은 곳도 따로 있지 않다 싶어요. 가까운 곳이 먼 여행지 못지않은 설렘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요. 연암의 『열하일기』에서였던가요, 물소리가 보는 이의 마음처럼 들리더라는. 집에서도 여행을 떠나는 마음처럼 살 수도 있겠고, 여행을 떠나서도 집에서처럼 지낼 수도 있잖겠는지.

책이란 게 그렇잖아요. 우리가 다 살아보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다 코로나19가 벗어날 즈음엔 책에서 만난 어느 곳으로 떠날 수도 있겠지요. 가고 싶은데 시간이 없고 돈이 없다? 에이, 우리는 어떤 일이 중요하면 어떻게든 그걸 하게 되지요. 비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중요하면 어떻게든 거기 쏟지요. 물론 지나치게 무리한 금액이 아닐 경우지만. 지금 떠나지 못한다면 더 중요한 걸 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떠나는 게 더 중요하다 싶을 때, 가는 거지요!

코로나19는 우리를 잠시 멈추고 하고, 또 우리들에게 꿈꾸는 시간을 주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 사태에 대해 ‘사상초유’라는 표현들을 흔히 쓰는데, 인류는, 우리는 늘 처음을 살아왔습니다. 내일이란 건 언제나 가보지 않은 길이 아니던가요. 당면한 일을 당면하며 사는 것, 그게 존재의 숙명 아닐까요.

건강을 특별히 물어야 하는 시절, 부디 강건하시기를!


* 옥영경

삼십여 년에 걸쳐 백두대간을 걷고,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MBC(마르디 히말 베이스캠프)를 다녀왔으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일부 접근했다. 가끔 암벽도 오른다. 사회과학 서점을 드나들며 80년대를 보냈고, 새로운 학교 운동 1세대로, 공동체 운동 2세대로 90년대를 보냈다. 

새천년엔 충북 영동 민주지산에 깃들어 20여 년, 나이 스물둘에 시작한 새로운 학교 운동을 삼십여 년이 흐른 지금도 하고 있다. 자유학교 물꼬의 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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