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에서는 백합나무 아래 개똥 무더기며

여러 해 숨어들 듯 마른 가지들 쌓인 곳들을 치우고 있었고,

 

어제부터 본교 특수샘이 병가다.

제도학교 시스템에 서툴어 공문이며 그를 기대고 지내는 시간이 긴데

갑자기 그의 부재에 허공에 한 발을 둔 느낌이 어제는 있었다.

마침 본교로 건너가야 하기도 했어서

어제는 그곳에서 필요한 일들을 챙겼고,

오늘은 분교에 머물며 그의 메모들을 챙기다.

장애이해교육 온라인 학습영상을 각 반 담임들에게 전하다.

 

드레싱을 만들어 야채샐러드에 끼얹은 도시락을

교사 바로 앞 운동장 가 스탠드에서 볕을 바래며 먹는다.

간밤, 가까운 도시에 사는 물꼬 식구들을 들여다보고

묵었다가 아침밥상을 차려준 뒤 도시락을 싸서 넘어왔더랬다.

건너 교문이 있고, 그 너머 산이 펼쳐진다.

물꼬가 아닌 곳이라는 생각을 잊게 하는.

나는 이 작은 곳에서 날마다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점심엔 병설유치원 교사와 분교 뒤란 언덕길을 걸었다.

탱자꽃이 피었다.

남도에서만 봤던 탱자 가시였는데.

하얀 꽃을 몇 개 따다 작은 그릇에 물을 담고 띄워 학급에 두었다.

학교며 학교 둘레에서 때때마다 꽃을 따다 둔다.

봄을 안으로 들이는 물꼬에서의 삶이 이곳에서도 이어지는.

 

오후에는 특수학급의 한동이네 방문수업을 갔다.

마을을 돌며 봄들꽃을 익히고,

들어오며 꽃 하나 꺾어와 손풀기를 하고,

온라인학습이 이루어지는 '바로학습'을 켜서

아이가 혼자 공부할 때 필요한 걸 점검하고

(특수학급에서는 수학과 국어만 지원하고 있으니),

수학은 지난 학기 했던 두 자리수 덧셈 뺄셈을 돌아보고

국어는 동화책으로 연음 발음하기.

한 발 가까워진 거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물꼬 바깥식구들이 분교가 있는 소읍으로 종종 왔다.

인사도 있었고, 지나는 걸음일 때도 있었고,

어떤 문제를 얼굴 보고 상의하러 온다고도 했고,

여기 있다 하니 보러 온다고도 하는.

그렇다면 주마다 물날 저녁 시간에 보는 것으로 정해도 좋겠네 했다.

오늘 한 식구가 다녀갔다.

뜰을 잘 가꾼 한 절과 식물원을 들렀다

지는 해가 보이는 호숫가 한 집에서 밥을 먹었다.

먹을거리들을 사택에 들여주고 갔다.

 

포털을 보다가 한 젊은 친구에게 하나를 링크해서 보내다.

성실한 습관에 대한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 적확해서 보내야겠다 생각하는 글은

결국 자신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1. 모든 걸 제자리에 둔다; 이건 물꼬에서의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2. 파킨슨 법칙; 어떤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을 최대한 끝까지 쓰기

  학기 과제가 사흘이라면 이틀 안에 끝내는 걸 목표로,

  그 시간 안에 못해도 일을 대부분 끝내 놓으면

  더 문제 되는 부분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으니까.

3. 하기 싫은 일은 더 빨리 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인용했더라;

  “개구리를 꼭 먹어야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먹는 게 좋다.

  또 개구리를 두 마리 먹어야 한다면 큰놈부터 먼저 먹어라.”

4. 무리한 약속을 안 한다;

  성실한 사람이 약속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무리한 약속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5. 공정성을 지켜라.

  ‘성실한 사람은 근무 시간 기록표를 속이거나,

  사무용품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게임이나 스포츠를 할 때 규칙을 어기거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무언가를 빌리고는 돌려주지 않거나,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사용할 확률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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