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1.쇠날. 맑음

조회 수 351 추천 수 0 2020.08.06 04:47:41


 

어제 한낮 33.

어제보다 더웠다.

송홧가루 날리고.

 

1시간 일찍 나서서 분교로 들어섰다,

오늘부터는 풀을 좀 매야지 하고.

누구네 학교면 어떠냐, 있는 곳이 내 자리.

운동장()은 내 눈에만 보여!”

나이 드신 주무관님 왈.

봄날 내내 아주 잘디잔 풀을 발로 톡톡톡 짓누르다

어느새 조금 자라버린 건 긴 삼각괭이로 살살 긁던 그니였다.

두어 주 전엔 학교 바깥 울타리를 돌아가며 이른 아침 약도 치시던데,

꽃밭에도 치시긴 할 게다.

그래도 못다 잡는 것들이 있다.

여기 개망초만 뽑으면...”

본관 앞 꽃밭은 잔디는 덜 뻗었고,

개망초의 기세는 키우려는 꽃들을 금세 덮어버릴 테지.

개망초를 뽑다.

 

6학년 담임도 주차를 하고 꽃밭을 들렀다 간다.

오늘 분교를 들어서는데 날씨도 좋고 꿈같은 풍경이더라고,

교사 시작하고 선배들이 시골 분교에 대해 하던 이야기를 들으며

꿈꾸었던 그런.

거기 옥선생님이 풀을 매고 계신데...”

평화로웠단 말인가 보다.

그렇다, 날마다 우리 삶에 깃들 평화가 있다!

 

들어오던 유치원교사도 화단 끝에서 아침 인사를 건네다.

물꼬 휘령샘을 닮은, 유쾌한 성품도 솔직함도 싹싹함도 긍정적임도, 심지어 외모까지,

그래서 내가 더 어여뻐하는 그니다.

어른들은 웃겨요.

제가 애기 어릴 때 데꼬 나가면

아고고 더운데 애 양말 벗기라고,

그런데 벗겨서 나가잖아요?

그러면 이번에는 아고고 왜 애 양말을 벗기고 다니냐고 신기라고...”

수다를 떨다 들어간다.

 

IEP(개별화교육계획) 회의록 결과보고서를 기안하고 올리고.

다음 주 일정 출장 기안하고 여쭙는 문서 보내고.

달날엔 분교의 모든 교사가 아이들이 긴급돌봄을 하고 있는 마을공동체를 찾아가 할

어린이날 활동에 대해 논의하다. 선물도 전할 거지.

등교 개학 전까지 계속 방문수업을 하고 있는 우리 특수학급 아이는

내가 실어오고 실어가고 할.

오전은 그렇게 훌쩍 흘렀다.

건너가는 휴일이라 부장샘들 빼고는 다들 연가를 써서

고요한 학교였다.

방문수업 가기 전 볕에 나가 유치원 교사와 낮밥을 먹고.

 

오후 수업 후 본교 특수학급에 들러 동료 교사가 준 김치를 챙기고

(세상에! 내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다. 담은-그의 시어머니지만-김치를 얻어먹는...

손수 담지 않고도 김치를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며 제법 부러워했던!)

사택 들러 살림을 좀 살펴놓고 물꼬에 들어올 장을 보다.

달날 분교 교사들 모두 같이 먹을 낮밥 재료도 준비 좀 하고.

달날마다 분교샘들한테 물꼬 밥을 멕일 생각이지,

밥이 중하다 말할라 하지.

같이 먹는 밥은 사람사이의 벽도 허문다.

 

대해리로 돌아오다 옥천 이원 묘목시장에 들린다.

이 맘 때쯤 꽃을 좀 들이는.

장미와 패랭이와 수국 몇 개 담아오다.

아침뜨락에 놓을 것들이다.

학교아저씨는 오늘 감자밭을 맸다고 했다.

 

언제나 시작은 청소로.

대처 자식네 가서 쓸고 닦고,

분교 교실문을 열며 바람을 들이고 쓸고 닦고,

교무실 들어 응답전화기를 확인하고 바람을 들이고,
물꼬 사이집 들어서며 한 주 묵은 먼지를 쓸고 닦고.

새 둥지에 삶의 전을 펴듯.

주말에는 물꼬에서 또 뜨겁게 산골살이를 하겠다.

내일은 꽃을 심고, 자작나무 얼마쯤을 심으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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