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꼬를 떠나 다시 제도학교에서의 삶이 이어진다.

등교개학 전 방문수업 마지막 날, 오전 10시 은별이네 마당에 들어섰다.

신발들(이라야 슬리퍼와 장화가 전부인)이 아무렇게나 널려있고, 기척이 없다.

외출을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댁 마루 앞의 신발들은 올 때마다 그랬다.

아이 이름을 부르다 마루에 올라 방문을 두들겼다.

아직 잘 수도 있다. 지난번에도 아이의 언니가 있어도 내다보지 않았더랬다.

오늘도 그럴 수 있다. 문을 다시 두드렸다.

있어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학생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다.

어머, 선생님...”

오늘이 그날이냐, 시간이 벌써 그리 된 거냐 쯤으로 이해되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교사들이, 너무 일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일컫는 그니였던.

자요...”

아이가 잔단다.

제가 깨울게요.”

아니요, 여기, 비닐하우스에서 자요.”

밭에 있는, 주로 식구들의 생활근거지인 그곳이다.

방문수업이 있던 첫날, 수업을 마친 아이가 손을 붙잡고 가자던 곳이었고,

그렇게 마을 건너 밭들에 둘러싸인 그곳에 갔더랬다.

미안해하시며 얼른 깨운단다.

내보내라 했고, 나도 나설 것이니 만나면 데려오겠다 했다.

비닐하우스에 다 닿도록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만 두어 번 갸우뚱거리며 도착하자

개들이 먼저 아는 체했다.

어머, 웬일이야...”

정신없는엄마가 고새 내가 오리란 걸 잊었나 싶었더니

어쩌다 동네사람이라도 오면 난리라는, 개들의 대표격인 문앞의 개가

어째 얌전한가에 대한 반응이었다.

지난 번에 아이랑 함께 왔을 적 개들과 인사를 나눴던 것.

요새 물꼬의 가습이 제습이 때문에도 개들이랑 좀 친해진.

머리카락이 몇 가닥 삐죽거리고, 부스스 눈이 덜 떠진 아이가 나온다.

덩달아 일어난, 지난 번 산책처럼 아이의 남동생도 같이 가지 않겠냐 권해보지만

모발폰을 들고 눈뜨자마자 벽 쪽에 벌써 자리 잡고 앉은 그는 도리질했다.

 

오늘은 마을길을 따로 걷지 않아도 되겠다.”

집으로 가는 길이 산책이라.

수로에 미나리가 꽤 자랐고,

모를 갓 심고 물을 댄, 논두렁 잘 여며진 논들도 지났네.

애기똥풀이며 지난 시간 보았던 들꽃들도 인사하고.

저 길도 가 봐요!”

안될 게 뭐람. 오늘 아침은 이 길은 그대로 걷기공부라.

여기 살아도 가보지 못한 길이 많은 아이라.

우리 모두 정작 사는 공간에서 딛지 못한 길이 얼마나 많더냐.

길은 어느 댁 밭에서 금세 끝났다.

선생님, 토끼 봤어요?”

토끼를 언제 보고 못 봤더라...

눈이 빨간 흰색 토끼며 여럿 보았다.

마을공동체에서 만든 식당 앞에서

잘 가꾼 패랭이며 바글바글 달린 블루베리도 보고

운동기가구에도 올라탔네.

 

....

방문을 열자 가득 널려있는 빨래들.

아이들이 넷, 거기에 더해 부부의 옷까지

빨래 한 번을 하면 그 양이 또 얼말까.

마당에 들어설 때 이미 이쪽 끝에서 저쪽까지 빨랫줄을 다 채운 빨래가

방에까지 널린.

그렇잖아도 일상의 정리부터가 더 중요한 공부이겠다 여긴 환경이었더랬다.

헤집어놓은 물건들 사이에서 집중력을 시험할 고시공부도 아니고,

시간을 다퉈 해야 할 임박한 공부도 아니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걸로 수업해야겠다 앞치마도 챙겨온 터였다.

부엌방을 둘러보고 어수선했던 첫 방문의 상황으로부터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광경.

 

아이와 함께 양말부터 짝찾기하고 개기,

개수대 그릇 몇 개 담겨있는 것 치우고

싱크대 닦고 정리하고.

다 할 수는 없으니까... 이게 우리 공부시간의 목적은 아니니까.”

최소한의 정리를 한 다음 수학과 국어 수업을 한다.

선생님, 지우개 없어요?”

아이는 자주 어른을 불렀다, 제 앞에 두고도.

뭔가를 준비하는 데 느렸다.

서둘러야 할 까닭이 아무것도 없으니.

아주 급하게 서둘 건 없어도

굳이 필요 없는 늘임으로 시간을 흘리고 다니는 것도,

움직임을 정돈하는 것도 도와야지 한다.

 

오후엔 할머니랑 달랑 둘이 사는(형은 기숙사에 가 있다) 한동이네.

1차시 걷기수업에는

함박꽃이 지고 있는 마을길을 걸어 호수로 갔다.

배 위에서 출렁이다가

아까시 이파리 떼기 가위바위보를 하고...

다른 사람 잘 챙길 줄 모른다는 아이는

이웃이 들고 왔던 빵봉지를 가져와 내게 하나 내밀었다.

집을 나올 적 할머니는 양푼이에 키운 다육이를 선물로 주셨네.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한사코 들고 나오신다.

많으니까 하나 가져가란다.

이것도 하나 가져다 심은 건데 이렇게 가득 채웠다고,

보라고 저것도 있고, 쩌기도 있다고.

그릇마다 그득그득했다.

그럼 저희 집에 있는 꽃도 패서 바꾸는 걸로 해요.”

 

전남 한 읍내의 중학교 교무실에 케잌을 몇 개 보냈다.

물꼬 식구 하나가 거기서 일한다.

물꼬에 보태는 그의 손발에 견주면 발끝도 미치지 못할 것이나.

그런 걸 해봤어야지, 헤매면서 어찌 어찌 주문을 한.

돈으로야 얼마나 되겠는가. 돈으로 하는 또 얼마나 쉬운 일인가.

물꼬가 전하는 마음이라.

부디 이 코로나19의 날들에 그대도 강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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