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15.달날. 갬

조회 수 315 추천 수 0 2020.08.13 02:49:01


 

끄응!

오늘은... 제도학교 출근을 한 뒤로 처음으로 대해리를 나서기가 싫었다.

이렇게 교사들은 소진되었던 것인가.

내 호흡이 이 만큼인가 싶은 자괴감도 스민.

그간 지나치게 의욕적이었나...

그케 학교는 왠지 뭔지 힘들제.”

19년을 초등학교 현장에서 일하고 퇴직을 한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멀리서, 아침마다 같이 노는 1학년 아이들이 주차장까지 나와 나를 기다렸다

차를 발견하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달아나는 시름!

그렇지, 교사는 아이들의 웃음을 먹고 산다.

사실 미적거린 아침은

발바닥 통증이 좀체 가라앉지 않고 있는 데다 꾸덕거리는 날씨도 한못 했을 것.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 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정희성의 시 과 함께 특수학급 아이들의 숲교실을 열다.

오늘은 나뭇잎 나는 모양 구분해보기어긋나기, 마주나기, 모아나기.

잎 가장자리 모양도 살펴보다.

민드람한가, 톱니가 있나, 물결모양인가, 물결이라면 그 파도가 큰가 작은가...

 

제도학교에서는 오전에 수업이 없는 교사들이 묘목을 심었다.

학교를 예쁘게 가꾸려는 교장샘의 열정에 샘들도 동참한.

마침 내 책을 사들고 사인을 받으러 온 가까운 교사가

묘목을 심고 돌아와 바깥의 소식을 전했다.

몸을 쓰는 일을 통 하지 않고 살던 그가 온몸이 뻐근하다기

몸을 좀 풀어주기도.

언제나 있는 곳에도 나를 잘 쓰기.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 특수학급에서 하는 수행 뒤

오늘은 진피차를 끓였네.

여름차로 최상은 아니나 날이 젖었을 땐 어느 계절이어도 좋은.

급식실 조리사 한 분도 오셔서 차를 나누었더랬다.

 

늙어 움직이지 못할 때여도 부모는 부모고,

육십이 되어도 회초리를 맞는 아들이던가.

20대를 보내고 있는 자식에게서, 혹은 자식과 다르지 않은 물꼬 샘들에게서

때때로 구원요청이 온다.

마음이 힘들 때 골짝에 깊이 사는 이에게까지 소식이 닿는.

얼마나 도움이 될까만

가끔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 친구들의 고민이 물꼬에 닿으면

적절한 글이나 책을 찾아 보내주기도.

그때 그때 언론에서 소개되는 책을 눈여겨보았다 전하기도.

오늘은 오늘의 글로 답한다,

엊그제 한 친구에게 보냈던 다른 메일도 덧붙여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

그건 과거에 거절의 경험이나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가 누적된 것일.

그래서 실제 공격이 아니라 대체로 허상일 때가 많은.

존재하지 않는 갈등을 자꾸 현실로 불러들이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지. 혼자 상처받고 혼자 분노하고.

그러다 그만 관계를 망치는 일을 반복해버리는.

타인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아주 평범한 안부도 우울한 날은 비난으로 들리기도.

그건 사실가 다를 수도. ‘사실이 아니다.

상대의 말을 그 말로만 듣기,

기본적인 신뢰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기.

때로 악의적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그의 몫, 그의 것일 뿐.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타인의 목소리가 사실은 상대가 아닌 내가 만든 허상.

하여 우리는 조금 더 둔감해져도 괜찮다!

 

물꼬에서는 오늘 마늘을 수확했단다.

열일곱 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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