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어찌나 밝던지, 보름이었던 게다.

산마을이 너무 환해서 자꾸 고개 들어 둘러보는 밤.

달빛에 만든 그림자들이 늦은 오후 같은 낮 마냥 환했던.

 

처음으로(는 아닌 것 같고) 이번 학기 지원수업을 나가고 있는 제도학교로 가기가 싫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주말에는 거의 죽음이다.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아침뜨락에 들어 아고라의 풀과 측백나무 둘레,

그리고 개나리 묘목두렁에 풀을 뽑았다.

다른 식구들은 사이집이며 잔디 사이에 풀을 뽑고,

제습이와 가습이 산책도 시켜주고.

애호박전이며 달걀말이며 오징어채볶음이며 두부구이조림이며

대처식구들이 한 주 먹을 반찬을 실어 보내고.

다시 오후에 아침뜨락으로 들어 어제 벌여놓은 일들을 이어갔다.

햇발동 앞에서 로즈마리들을 꺾어다 오메가 한쪽을 더 채우고,

옴자의 샤스타데이지 사이 풀을 맸다.

볕을 못 봐 오르지 못하고 있던 데이지들.

뜨락의 넓은 곳들을 기계로 미는 이들 남기고 뜨락을 빠져나와

햇발동 앞 백일홍 둘레 풀을 매다.

 

저녁밥상을 차린 지 한참을 지나고 있었다.

늦게야 나타난 식구들에게 짜증을 좀 냈네.

그찮아도 거의 처음으로 제도학교 가기 싫은 마음이 들고 있는데,

이렇게 늦어지면 고단하고 그러면 그 마음이 더 힘들 거고,

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식구들 왈, (당신들은 계속하고) 나만 일 안하면 된다 생각했다는.

일찍 학교로 내려갔으니 좀 쉴 수 있겠거니 했다는.

이런! 저녁밥상이 늦어지면 그것도 아니지.

집안으로 들어가야, 그제야 일이 끝나는 것 아닌가.

더구나 주부 일이란 것들이 부엌에 있으면 계속 움직이게 되는 거라.

 

달골에 다시 올라와 오후 볕이 잠깐 보이자마자 열어두었던 문들 단속하고,

창고동 난로에 불을 지펴 습을 좀 날리고.

한 주 내내 닫혀있을 공간, 더구나 장마다. 마른장마도 아닌.

소각장에 불도 피우고.

오늘의 마지막 일은 9월에 있을 한 중학교 예술명상 일정에 대한 답메일 보내기.

두 달 동안 그곳으로 가서 할 수업을 몰아 물꼬에서 하기로.

나흘 일정에 점주샘이 와서 붙기로 한다.

그가 온다, 그러면 걱정할 게 아무 것도 없지, 일 벌써 다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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