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났다. 가끔 구름에 가리기도 했으나 날 환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 편히 잤다고 했다.

어제 실타래를 비롯 같이 보낸 시간이 준 덕분이라 했다.

아침에는 걷기가 딱 좋았다.

아침뜨락에 들었다.

아고라로 가 말씀의 자리에 돌아가며 앉아

다른 이를 위한 사랑의 말을 전하였다.

덕담이 이어졌다.

밥못에 들어서서는 어제 만들어두었던 소박한 분수(사실 그냥 물호스다)를 틀다.

물이 분사되었다. 그 순간 볕이 있었다면 무지개를 만들었을...

그래도 흩뿌리는 얼마쯤의 물로도 흡족했다.

몇 차례 여러 각도로 물을 틀어보며

어느 지점이 가장 적절한가 지점을 찾아보기도.

작은 것으로도 퍽 기쁜 이곳의 삶이라.

 

학교에 내려와 수행방,

몸을 풀고 대배를 한다.

요새는 물꼬의 상징이라 일컬어질 만한 대배는

기도이고 명상이고 운동인.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몸으로 그리 익히는데 우리 어찌 절망에서 일어나지 못하겠는지.

 

마지막 일정은 일상 훈련.

마늘을 까고, 감자 벗겨 으깨고, 참외를 깎고.

내가 먹을 과일 하나를 깎지 못한대서 말이 되겠냐며

쟁반 하나씩 끌어안고 말이다.

아주 똑똑한 친구들이지만

역시 요새는 일상에서 익히지 못하는 일들이 제법 많은 시절이라

이들 역시 다르지 않은.

그래서 청계는 초등 계자에 새끼일꾼으로서의 준비가 되는 시간이면서

제 자신에게도 내가 어찌 사는가를 살펴보는 계기.

 

갈무리를 하고 늦은 낮밥을 먹고 일정을 끝냈을 때 소나기 지났다.

그렇게 여름 이틀 우리들의 시간이 또 지나가네.

4시에야 도착할 수 있다는 차,

아이들이 책방에서 쉬는 동안

가마솥방에서 재봉질 좀.

수를 놓던 식탁매트가 있어 뒤판을 대고 뒤집어 레이스를 달고.

올 때 그랬듯 갈 때 또 한 부모 앉아 차를 마시며

가족상담처럼 얘기들을 나누다.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라.

발해 1300호 뗏목을 타고 떠났던 이들이 있었고

거기 대장이 절친한 선배여 해마다 그들을 기리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배에 올랐던 4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네의 삼촌이라.

정작 그 삼촌은 얼굴도 모르는데

그 삼촌은 동생과 같이 추모제를 지내고는 해왔지.

아이 일로 이리 또 보게 되는.

 

6시가 다 되어 사람들을 보냈다.

행주며 빨래들을 삶아 널어놓고 달골로 향했다.

늦어질 저녁 밥상이라 뭘 좀 먹고 일을 시작했다.

지름이 거의 1m인 커다란 물항아리(화분이라 해야 하나) 둘 들어왔다.

느티나무 삼거리(사이집-아침뜨락-햇발동/얼마 전 벽돌을 깐 곳)

수련 항아리 둘 놓기로 했더랬다.

땅을 패서 편편하게 하고 국화빵 벽돌을 깔아 판석으로 놓고

그 위에 수련 항아리를 놓았다.

수련과 함께 같이 들어온 하얀 연은 대야 채 햇발동 앞에 놓았다.

아침뜨락의 달못 안쪽 가장자리 풀을 좀 정리하기로 했고,

햇발동과 창고동 앞 주목 둘레 풀을 뽑았다.

역시 어둠이 밀어내서야 내려서는 마을이라.

물꼬의 삶을 다시(?) 살아가노니,

다음 주는 계자 준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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