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24.달날. 맑음

조회 수 372 추천 수 0 2020.09.17 23:50:12


 

다시 물꼬를 벗어나 소읍에서 보내는 날들.

이 달 31일까지 이번학기 제도학교 지원수업이라.

물꼬 식의 이름은 그렇지만 제도학교로 보자면

갖가지 비정규직이 많은 학교의 기간제교사 가운데 하나.

 

정말 달렸다, 종일.

갑자기 오늘 안으로 다 해결해야겠는 일정으로.

예정대로라면 제도학교 개학일이지만 94일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된 수업이라.

관내 초등생이 코로나19 확진이 되자 급작하게 결정된 일정이다.

당장 오늘부터 계약기간이 끝나는 831일까지 연가처리(굳이 재택근무 신청할 것 없이)가 가능하다지만

아직 정리해야 할 분교와 본교의 책상이 있고,

사택에 남은 물건도 두어 가지 있고.

행정실과 분교 특수샘과 머리 맞대고 처리해야 할 일도 있었던.

분교부터 달려가 책상 정리.

혹 두고 온 것은 무엇인가 들여다 본.

방학 전 갈무리를 하긴 했다.

다만 책상 컴퓨터에 안에 자료 정리가 덜 된.

학교 주무관님이 학교 뒤란 텃밭에서 기른 오이를 챙겨 교실에 넣어주셨다.

분교에서 지내는 동안 상추며 열무며 호박이며 강낭콩이며 두루 얻어먹었다.

삼촌 같은 당신이었더라.

그런 친절들도 이곳 삶도 잘 건너갈 수 있었던.

어디서나.

그래서 살아지는 삶.

 

본교에서는 특수샘이 갑자기 생긴 온라인학습 상황을 앞두고

학습꾸러미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내 몫까지 그의 일이라.

제도학교에서 지내는 동안 그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내가 장애이해교육이며 숲교실이며 풍물수업이며 수행을 안내하고 차를 낼 때

그는 그런 것으로 그의 몫을 안아주었다.

방학 중 근무하던 날들에

6학년 특수아동을 데리고 대중교통 익히기와 소근육활동을 사흘 했던 출장 관련하여

행정실에 정리해주어야 할 서류들도 있었다.

 

특수학급 아이들의 평가도 남아있었다.

주간평가에 더해 전체평가.

오늘에야 알았네, 교사들의 학년말 평가를 위한 평가 문구들이 담긴 사이트도 있다는 걸.

그런데, 특수학급 애들 건 없어?”

없어요. 개별화잖아.”

그래도 해오던 일이라면 일도 아닐.

하지만 내겐 일이었네.

오후에는 그간 한 작업을 들여다보며 평가 준비를 하다.

그나저나 IEP 파일이 안 보인다, 컴퓨터 안에는 있지만.

가방에 내내 넣고 다니셨잖아요?”

그러게. 아마도 분교 책상 위 책꽂이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내일 확인해야.

어차피 하루에 다 못할 일들이었다.

하여 사택에서 자고 하루를 더 근무한 뒤 물꼬로 돌아가기로.

 

퇴근 후 바느질을 하며 한숨 돌리고,

다시 저녁 7시에 학부모와 면담이 있었다.

제도학교에서 만나 물꼬 인연으로 이어진.

댁의 아이 둘이 계자를 다녀갔다.

거의 네 시간 가까이 이른 대화였다.

한바탕 자신을 풀어낸 시간쯤 되었을 것.

당신은 이렇게 풀고 있지만 그대의 남편은?

애들은 걱정 마, 그들은 그들의 생명력으로 잘 살아.

그러니 남편한테나 잘해.”

그걸 또 받을 줄 아는 그였더라.

 

나오는 내게 한보따리를 내민다.

이런 거 못 받습니다.”

물꼬에 보내는 거예요.”

늘 쌈장과 초고추장을 만들어둔다.

천지가 물꼬 텃밭이라.

누구라도 들어와 가마솥방 밥바라지가 없는 때라도

무엇이라도 뜯어다 비벼먹는다.

그런데 물꼬의 비어있는 초고추장 유리병을 보고도

미처 만들어두지 못하고 왔음을 그가 어이 알았나.

호박과 먹을거리 사이에 초고추장이 두 병이나 들었더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874 2008.12.26.쇠날. 맑음 옥영경 2008-12-30 1385
5873 2006.10.19.나무날. 비 머금은 하늘 옥영경 2006-10-20 1385
5872 119 계자 이튿날, 2007. 7.30.달날. 간간이 해 나고 옥영경 2007-08-06 1384
5871 117 계자 닫는 날, 2008. 1. 27.흙날. 눈발 옥영경 2007-02-03 1384
5870 11월 17일 물날 흐림 옥영경 2004-11-24 1384
5869 2011. 8. 6.흙날. 갬 / 146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1-08-24 1383
5868 2008. 4.30.물날. 맑음 옥영경 2008-05-16 1382
5867 2005.12.20.불날.눈 빛나다 / 내가 장갑 어디다 뒀나 보러 왔다 그래 옥영경 2005-12-22 1382
5866 2005.10.20.나무날.맑음 / 같이 살면 되지 옥영경 2005-10-22 1382
5865 2008. 7. 6.해날. 맑음 옥영경 2008-07-21 1381
5864 2008. 1.2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2-22 1381
5863 4월 10일 해날 축축한 날 옥영경 2005-04-17 1381
5862 10월 14일 나무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04-10-28 1381
5861 2012. 6.23.흙날. 날은 어찌 그리 절묘했던가 / 시와 음악의 밤 옥영경 2012-07-04 1380
5860 2009. 3.29.해날. 다사로워진 날씨 옥영경 2009-04-08 1380
5859 128 계자 나흗날, 2008.12.31.물날. 맑음 옥영경 2009-01-07 1380
5858 4월 18일 해날, 소문내기 두 번째 옥영경 2004-04-28 1380
5857 봄날 닷샛날, 2008. 5.1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8-05-23 1379
5856 2008. 4.22.불날. 맑음 옥영경 2008-05-11 1379
5855 2007. 9.29-30.흙-해날. 쨍 하더니 눅진해지다 / <안티쿠스> 휴간에 부쳐 옥영경 2007-10-09 137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