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25.불날. 태풍 바비

조회 수 332 추천 수 0 2020.09.17 23:50:54


 

시커먼 하늘, 바람과 비가 뒤섞여

자정을 지나며 비바람이 때리는 소리에 집이 들썩이고.

태풍 바비는 이 새벽까지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고 있다.

저녁에 달골 햇발동과 창고동 모든 문에 걸쇠를 잠그다.

제도학교를 떠나 물꼬로 돌아와 있다.

31일 계약 종료일까지 연가 처리하고.

일을 마치고 오기 다행, 내일까지 머물렀으면 오는 길이 쉽잖았겠네.

 

등교근무 마지막은 마지막 날다웠다.

인사는 미루었다. 아직 근무일이 남았으므로.

코로나19의 어수선한 상황도 상황이고,

아이들과도 하지 못하는 인사인 걸. 일단은 그냥 지나치기로.

9월에도 10월에도 볼 일이 있고.

사라진, 가방에 늘 넣고 다녔으나 방학 직전 어딘가 잘 둔,

(늘 너무 잘 두어 못 찾는 일이 생기고는 하더라. 평소처럼 해야 한다니까!)

IEP 서류부터 찾았다, 아무래도 분교 특수학급 책상 위가 아니면 있을 곳이 없는.

세상에! 습으로 문제의 파일이 서류파일 사이에 안쪽으로 딱 붙어있었던 거라.

PC에 없는 것도 아니나, 또 공문함에 결재도장들이 찍힌본 서류가 없는 것도 아니나,

그게 또 원본이라 후임자에게 잘 남기고 팠던.

뭐 뭔가 있어야 할 게 없다 싶으면 그 불편한 마음도 마음이고.

대단한 걸 찾았는 양.

오늘도 아침은 분교 주무관님이 특수학급에 슬쩍 넣어주는 오이를 먹었더라.

마지막 청소를 하고 문을 닫고 나오다.


본교로 옮겨서는 본교 특수샘의 점심 대접을 받고,

다시 가열찬 서류 행렬이라.

어제 행정실로 보낸 출장비 정산 서류에 오류가 있네.

이게 참 남으면 문제가 안 되지만 십원이라도 넘치면 문제라.

거참... 헤헤 저는 못함요. 본교 특수샘한테...”

결국 그가 공문 하나를 만들어 처리해주다.

마지막 평가서로 낑낑대고 있자

그마저 그가 안아주다.

때로 그가 일이 아닌 게 내겐 큰일이고,

내겐 아무 것도 아닌 게 그에게 큰일.

그렇게 서로를 기대고 보낸 학기였더라.

덕분에 물꼬 돌아올 준비를 여유로이.

오후의 끝에는 본교 특수샘이며 가까웠던 또 다른 샘이 물꼬에 가져온 코팅지를 같이 챙겨주다.

물꼬에서 원활하지 않은 프리터며 코팅기며를 짐작한 특수샘이

잊지 않고 챙겨준 일.

본교 특수학급조차 오랜만에 쓰는 기계가 말썽을 부리자

교사휴게실까지 가서 선물처럼 해다 준 것들.

물꼬 몇 곳에 붙일 것들이라.


퇴근 전 마지막 한 시간은 후임자에게 남기는 글월.

문서로 남길 것들도 있지만 그 너머의 말들이 또한 있는.

전체 1학기 수업상황을 묘사하고, 이어갈 일들과

아직 내가 마지막까지 책임지고자 하는 6학년 한동이의 진학에 대한해서도 덧붙이다.

분교에는 주무관님께, 본교에는 교감샘께 작은 인사도 건넸다.

멀리 벗의 지인이 짓는 복숭아농이 있어 한 상자씩 보내다.

물꼬엔 올 여름 딱히 나눌 게 없는 농사라.

자리를 딱 비우는 오늘자로 택배를 넣은.

 

이번 학기 지원수업과 달리 나들이로 물꼬로 들어오는 2학기 일정도 최종 확인하다.

9월에 전교생 나들이로 나흘을 잡아두었던 일정은 잠정연기,

코로나19 상황이 어찌 흘러갈지 몰라.

10월에 주마다 특강을 가기로 한 일정은

10월 셋째 주로 한 번에 몰아 잡아두다.

그 역시 날이 더 흘러봐야 알 수 있을.

 

마지막 바느질 모임을 끝으로 소읍을 떠나오기 전 한 학부모네 들리다.

제도학교에서 연을 맺어 이제는 물꼬의 부모님이 된.

물꼬 여기저기 유용할 나무 붙박이 옷걸이를 챙겨주시다.

곁에들 나눌 수 있는 양까지 넉넉히.

그렇게, 장대한 여정이라고까지 말한다면 과장이나

마치 그 느낌대로 장대한, 제도학교 지원수업이 끝났더라.

내일부터 말일까지는 남은 연가를 쓴다.

마지막을 그리 비우기 편치 않을 수도 있었겠으나 온라인학습 상황이라 가능한.

제도학교 지원학기의 시작도 끝도 외려 코로나19의 도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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