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람의 시간이 지나고

하늘은 말간 듯 보이나 날리는 비의 느낌으로 아침이 왔다.

곧 해가 났다.

 

! 학교로 출근을 하려는데, 달골 주차장에 물이, 어마어마한 폭포수가...

그야말로 갇혔다.

다른 차들이 없었고,

대문 쪽으로 조금 위쪽에 주차한 덕에 차 바퀴가 잠기지는 않았다.

작은 개울을 가로질러 다리가 길에 이어진 곳,

아래 수로가 물을 빼지 못해 길 위로 엄청난 속도로 물이 넓게 콸콸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흘러내린 흙과 돌과 바위로 큰 수로가 막힌.

길 가장자리 시멘트와 아스팔트가 유실되어 들어오는 길목이 좁아졌고,

길 아래쪽으로는 물이 아찔하게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걸어 지나다가는 휩쓸리겠는.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상촌에 여기저기...”

짐작하고 있었다.

더 위험하고 급박한 곳들을 처리하고 오자면 시간이 좀 걸릴 게다.

우선 119에 도움을 요청하란다.

내가 구조되는 게 문제가 아니지.

이 차로 나가서 이 차로 돌아와야 하는 걸.

아래 학교에 연락을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멀리서 굴삭기 올라오고 있었다.

올라오면서도 언덕 쪽에서 무너져 막힌 길을 여러 곳 뚫어가면서,

수로에 쌓인 흙더미를 긁어 계곡 저편으로 던져내면서.

정오께 대략 마무리되다.

굴착기가 거칠 게 정리한 주차구역,

면사무소에서 공사를 하러 들어오자면 한참 걸릴 시간이라,

식구들이 들어오는 대로 길을 좀 정리해얄 것이다.

 

오전에 뺀 진은 오후에 책을 좀 보며 숨을 고르고,

늦은 오후 사이집의 눕다시피한 편백들 지줏대를 다시 세우고

도라지 밭 가 철쭉 사이, 그리고 그 너머 풀을 뽑았다.

사이집 앞에 심은 세 그루 사과나무에 달린 사과,

하나 따서 깎아보았네.

사과향이 퍽 진했다. 신기했다.

세월이 어째도 익을 것은 익는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산문을 하나 들었다가,

언젠가 막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저녁에, 한여름 불가에서 장사를 해온 엄마가 

누가 와 귀싸대기 때려도 웃을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노동 후 땀에 전 몸으로, 그해 

첫 간절기 바람을 맞으며 선하게 맑아지던 엄마의 옆얼굴. 때로 내 글과 숨이 엄마에게 그런 한

줄기 미풍이 되어드렸으면 좋겠다.”,

라는 문단을 읽었다.

가슴이 알싸했다.

나는 그렇게 쓰고 있는가 묻고 있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578 2023. 8. 2.물날. 구름 무거웠으나 옥영경 2023-08-06 451
5577 2020. 2.27.나무날. 흐렸다가 갠 오후 옥영경 2020-04-01 452
5576 2020. 8. 8.흙날. 비 / 166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20-08-13 452
5575 2021. 3. 5.쇠날. 갬 옥영경 2021-03-26 452
5574 2022.11.10.나무날. 맑음 / 온실돔 뼈대 옥영경 2022-11-28 452
5573 2023.12.13.물날. 맑음 옥영경 2023-12-24 452
5572 2024. 1. 1.달날. 흐림 옥영경 2024-01-08 452
5571 2024. 3.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4-10 452
5570 2020.10.30.쇠날. 맑음 / 계단에 앉다 옥영경 2020-11-30 453
5569 2022. 8.27.흙날. 맑음 / ‘2022 멧골 책방·2’ 여는 날 옥영경 2022-09-08 453
5568 2024. 4. 7.해날. 맑음 옥영경 2024-04-23 453
5567 2019.12. 1.해날. 비 옥영경 2020-01-13 454
5566 2020. 8. 4.불날. 흐림 옥영경 2020-08-13 454
5565 2020.10. 5.달날. 맑음 옥영경 2020-11-15 454
5564 2020.10.18.해날. 맑음 옥영경 2020-11-22 454
5563 2023. 8. 4.쇠날. 해 옥영경 2023-08-06 454
5562 2023.12.10.해날. 맑음 옥영경 2023-12-21 454
5561 2024. 3.20.물날. 맑음 옥영경 2024-04-09 454
5560 2019.12.25.물날. 맑음 옥영경 2020-01-17 455
5559 빈들모임, 2020. 5.23.흙날. 맑음 ~ 5.24.해날. 소나기 / 나물 산행 옥영경 2020-08-12 455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