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에서는 그야말로 잠만 잔다.

그러기 위해 책도 가지고 올라가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오면 밤이 되어 잠자리로 가기 전까지 다시 올라가는 일은 거의 없다.

내려서면 잠이 깨고 움직임이 시작된다.

그런데 오늘은 거실로 내려와 다시 빈백에 털썩 주저앉아 책을 들여다보는데,

자꾸 눈이 감겼다.

2부 잠이 길었다가 천천히 햇발동으로 옮겨가 문을 여니

아이들이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왔다.

소율 소윤 소미가 엄마 아빠랑 와 있다.

모두 젖은 아침뜨락을 걸었다.

미궁을 돌고 있을 적 보슬비가 내렸다.

그렇다고 뛰어서 돌아오진 않아도 되는 비였다.

 

엊저녁 먹은 국에서 건져낸 어묵과 된장과 두부로 죽을 끓였다.

남은 밥으로 할 계획이었는데,

먼저 끼니를 챙겨먹은 식구가 아침을 제법 든든하게 먹었던 모양.

다시 냄비 밥을 조금 해서 더해 죽에 넣었다.

속이 편하게 든든한 아침밥상이었다.

소울이네 다섯 식구들도 어찌나 잘 먹던지.

 

오후, 잔 마늘을 다섯 식구가 붙어 까다.

별로 깐 게 없는 듯 보였는데 열 손이 붙으니 제법 많았다.

중국의 생산량이 이해가 되네.”

열두 살 소울이가 그랬다.

마늘내가 손끝에 내내 붙어 다녔다.

이제 바느질을 좀 할까?”

아홉 살 소윤이는 요새 바느질에 관심이 많고

종이 가방에 천 조각을 담아왔더랬다.

세 아이들을 데리고 앉아 둥근 본을 그리고 오리고 홈질을 해서

솜을 넣어 장식 모자를 만들거나 방울을 만들거나.

소윤이 건 제 옷에 달아주었다.

소윤이는 일곱 살 짜리 동생 소미를 가르쳤다.

손이 가장 여문 소미였다.

작은 장식 모자가 되었다.

밖에는 비가 종일 내리고.

 

고개 너머 마을에서 세 사람이 왔다.

설비하는 상호샘네 부부와 준한샘.

된장집 철거됐던 가스온수기 대신 전기온수기가 달렸다.

날이 추워지는데 자꾸 더뎌지는 온수인가 걱정이 좀 되었더니

학교아저씨가 편히 더운물을 쓰겠다.

그런데, 연결 부위에서 자꾸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네.

하루를 관찰하고 작업자에게 연락키로 한다.

저녁밥상에 열하나가 앉았더랬네.

코로나19 재확산 중인 요새 일정에 드문 숫자였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설거지 싱크대 아래의 배관 호스 청소를 했다.

1년에 한 차례나 겨우 하는 일인데, 어제부터 거기에 자꾸 눈이 가던 차.

끝내고 퍼질러앉아서는 걷어온 빨래들 다림질도 하다.

어른들은 책을 읽고,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같이 놀이를 하거나 하는

멧골 저녁풍경이 좋았다.

늦게까지 자지 않을 요량이 아니라면 저녁 8시가 넘을 땐 차를 내지 않는다.

시계는 밤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내일 오전에 마시기로들 하다.

 

한 차에 일곱이 다 구겨 탔다.

무사히 달골에 부려지다.

햇발동 거실에서 종이놀이 한 판,

그리고 모다 2층으로 올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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